[이재용 회장 취임 1년] 'JY 네트워크' 돋보인 1년...새로운 동행가치 제시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주요 행보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주요 행보

오는 27일 이재용 회장이 취임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은 10년의 부회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삼성의 수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해였지만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닥친 세계 IT 시장의 불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위기, 미·중 패권 경쟁까지 다중위기 속에 삼성전자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했던 시험의 시간이었다.

재계가 이 회장 취임 1주년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취임 당시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던 만큼 위기 속 삼성전자의 새로운 방향타가 될 리더십 정립과 새로운 사업 비전, 차별화된 경영 전략, 조직 혁신 등이 나올 때가 됐다는 관측이다. 이건희 선대회장과 차별화되는 이재용 회장만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이 회장이 선대회장과는 다른 색채의 리더십을 향하는 것은 지난 1년 행보에서 엿보인다. 강인하고 철두철미한, 어찌 보면 딱딱할 수 있는 경영자보다는 유연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인식된다. 명절 때마다 해외 법인을 직접 방문해 현지 직원을 격려하고, 간담회 등 격의 없는 소통으로 삼성 내부적으로는 '셀럽'의 이미지도 구축했다. 외부 공개 행보에선 대중과 인증사진을 찍고, '재드래곤'이라는 별칭으로 유머 콘텐츠 소재로 활용되는 모습은 이 회장의 친근하고 유연한 이미지를 증명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1일(현지시간) 이집트 중부 베니수에프주(州)에 위치한 삼성전자 TV·모바일 공장을 찾아 근무 중인 임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1일(현지시간) 이집트 중부 베니수에프주(州)에 위치한 삼성전자 TV·모바일 공장을 찾아 근무 중인 임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유연함은 이 회장이 새로운 삼성 조직문화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문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시장에 여러 가지 혼돈과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은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 오고 조직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회장의 최대 장점으로 평가받는 '네트워크'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이 회장이 부회장 시절부터 꾸준히 강조한 '동행' 가치와도 통한다. 동행은 현재 이 회장의 리더십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다.

이 회장은 동행의 가치를 국내 협력사를 넘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실적 한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JY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는 셈이다. JY 네트워크는 세계 기업인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당시 전 세계가 백신 확보에 혈안이었을 때 우리 정부의 화이자 백신 확보에도 JY 네트워크가 빛을 발했다.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11월 한 달에만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피터 베닝크 ASML CEO 회동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간담회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만나며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력을 발휘했다. 당시 뤼터 총리와의 만남은 앞서 6월 회동의 연장선으로 ASML의 EUV 노광장비 등 반도체 공급망 해소에 물꼬를 텄다.

제2의 반도체로 키울 삼성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 대한 비전도 글로벌 행보에서 드러났다. 올리버 집세 BMW 회장과 존 엘칸 페라리 회장이 방한해 이 회장을 만나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콕핏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핵심 제조계열사의 미래 먹거리인 전장 사업에서 글로벌 동행 영역을 키웠다.

올해 5월 대통령 미국 순방 경제사절단 동행 직후 22일간의 20여개 글로벌 기업 CEO 연쇄 미팅도 주목받았다. 이 회장이 'NEW 삼성'의 미래 전략을 구체화하고 비전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 기간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첫 만남을 갖고 차세대 자율주행 칩 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미국 북미반도체 연구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칸 부디라지 테슬라 부사장, 앤드류 바글리노 테슬라 CT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한진만 삼성전자 DSA 부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미국 북미반도체 연구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칸 부디라지 테슬라 부사장, 앤드류 바글리노 테슬라 CT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한진만 삼성전자 DSA 부사장

총 22일은 이 회장이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래 최장 출장 기간이었다. 유례없이 긴 출장이었던 만큼 이 회장은 JY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인공지능(AI), 전장용 반도체, 차세대 통신, 바이오 등 그동안 '미래 성장 사업'으로 점찍고 육성한 분야 선도기업 리더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동부의 바이오 클러스터와 서부 실리콘밸리 ICT 클러스터를 횡단하며 머스크 CEO를 비롯해 △존슨앤존슨 △BMS △바이오젠 △오가논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만났다. 이 회장은 이들과 중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 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삼성 수장으로서 정립하고 있는 새로운 동행 리더십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상생·동행이 협력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관계로까지 확대됐다. 이는 AI 등 신기술이 등장하고 빠르게 시장이 변화하는 시대에 선도기업 간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주도권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이달에도 21일부터 24일까지 대통령 중동순방 경제사절단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일정에 동행한다. 중동 순방은 한국 대통령의 첫 사우디 국빈 방문으로, 중동 경제사절단은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앞서 이달 초 추석 연휴 기간 삼성물산이 참여하는 사우디 '네옴(NEOM)' 신도시의 지하 터널 공사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었다.

이 회장은 중동 일정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평가받는 또 다른 시험대이자 그 경쟁력을 더욱 키우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수많은 글로벌 인사들을 만나며 동행 가치의 글로벌화를 꾀한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부문 체질 개선을 통한 초격차 유지 △전장 사업의 확대 △바이오·헬스 분야 영향력 강화 등 'NEW 삼성'을 위한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다.

[이재용 회장 취임 1년] 'JY 네트워크' 돋보인 1년...새로운 동행가치 제시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