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고속철도 등 생활에서 방출되는 전자파 노출량이 정부가 공인한 '인체보호기준'의 0.2~8% 수준에 그친다는 전문가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전자파에 대한 심리적·감성적 접근 보다는 데이터에 의거한 설명과 접근을 확산하자는 논의도 이어졌다. 동시에 각종 통신장비 디자인을 환경친화적으로 구성해 전자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여나가야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전파연구원이 31일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생활 속 전자파 바로알기' 행사에서는 국민 전자파안전인식 개선을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대중교통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10% 미만
김기회 국립전파연구원 연구관은 '생활환경의 전자파 세기가 궁금해요'를 주제로 대중교통 전자파 측정·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관 발표에 따르면, 전자파 인체영향 가능성과 관련해 생활·가전기기는 대부분 원자에서 전자에서 떼어내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낮은 비전리 전자파(60Hz)를 방출한다. LTE 기지국, 저대역 5G 기지국 등은 3.5GHz 대역을 사용한다. 0Hz~ 10GHz 대역은 이론상 유도전류를 이용해 말초신경과 근육을 자극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굉장히 강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방출해야 경우 인체가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5G·6G, 물체감지센서, 전자레인지 등이 사용하는 10GHz~300GHz 대역은 전자기장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 인체온도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역시 지속적인 방출이 필요하며 전자레인지 등은 차폐물질 등으로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제품이 발생시키는 전자파를 측정해 인체에서 영향을 보이기 시작하는 임계점의 50분의 1을 기준점으로 '인체보호기준'을 설정했다. 생활에 영향이 높은 제품을 지정, 관리한다. 인체보호 기준에 부합한 제품만 판매가 가능하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이같은 기준에 의거해 국민이 거의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 버스, 고속철도 등 대중교통을 대상으로 전자파를 측정했다.
지하철은 운행 과정에서 60·120·180Hz 전파가 발생한다. 1호선의 인체보호 기준 대비 노출량이 8.97, 신분당선이 2.69%, 2호선이 2.58%를 각각 기록했다. 5호선의 인체보호기준 대비 전자파 노출량은 0.32%로 가장 적었다. 버스는 인체보호기준 대비 노출량이 2~4%로 적었다. KTX는 60Hz 주파수 대역을 발생시켰다. 인체보호 기준 대비 노출량이 0.25%, SRT는 0.53%를 각각 기록했다.
이같은 값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의 측정요구 조건에 측정됐다. 김 연구관은 “100%가 돼야 인체 보호기준에 해당하고, 그 50배가 돼야 인체에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수준”이라며 “시민단체 등 시중의 측정기와 달리 전파연구원은 국제표준에 근거해 측정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파 인체 유해 과학근거는 미흡, 포비아 극복해야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생활 전자파 인식에 대한 심리적평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장 박사는 차폐율 90%라고 홍보하는 와이파이 공유기 전자파차단 섬유팩 등 과학적 근거 없이 전자파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상품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바이러스, 5G, 백신 등 음모론의 단골 주제로 전자파가 선정되면서 혼선이 가중된다. 일부 유명인사들은 '전자파 과민증(EHS)'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자파를 과도한 위험하게 인식한다.
장 박사는 “전자파에 대한 이성적 이해와 전자파 과민증은 무관할 수 있다”며 “전자파 포비아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더불어, 두려움에 대한 감성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시각적으로 무분별하고 두려움을 주는 중계기 디자인을 개선하고 침습성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도 전자파 갈등을 줄이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상혁 카톨릭대 의대 교수는 '생활 전자파 건강영향 역학연구'를 주제로 전자파 인체영향 연구의 어려움과 고려해야할 요소를 지목했다. 선진국에서 초콜릿 판매량이 높은 것을 두고 초콜릿이 아이큐를 높인다고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처럼, 다양한 변인과 편향(바이어스)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 연구사례로, 어린이 백혈병과 극저주파(ELF) 연관관계 역학연구를 소개했다. 독일 어린이 백혈병환자와 대조군 1301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24시간 측정에서 0.2μT 이상 노출될 경우 백혈병 위험이 1.55배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다만, 밤시간의 노출 위험도는 3.21배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78만4944명 임산부를 대상으로 임신시기 전력선과 변압기에서부터 집까지 거리와 태어난 아기의 소아암발생 위험을 분석했다. 모든 암 발생위험이 1.08 증가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배 교수는 “인과관계 규명을 위해서는 실험적 연구설계가 필요하나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적 연구를 수행하는게 불가능 한 경우가 많다”며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에서 전자파의 과도한 노출과 암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자파 안전포럼은 전자파에 대한 궁금증과 우려를 해소하고자 학계·시민단체 등 전문가와 일반인이 전자파 인체안전을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자파에 대한 불안감 없이 안심하고 전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전자파 안전인식 확산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기획됐다.
서성일 국립전파연구원장은 “앞으로도 국립전파연구원은 전자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지속 확산될 수 있도록 계층별, 매체별, 세대별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