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네 번째 맞는 '김치의 날'이다.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20년 김치산업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국가가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식품 가운데 법정기념일은 김치가 처음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2010년 설립된 세계김치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장해춘 소장은 “국내 법정기념일이 된 이후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김치의 날'을 법으로 잇따라 제정하고 있다”며 “이는 김치가 사회적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장 소장은 세계인들에게 김치가 예전에는 '이민자의 식품'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한 번 정도 맛보는 음식'을 넘어 '과학적 우수성이 검증된 건강한 음식이자 즐겨먹고 직접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여길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김치는 여러가지 원·부재료를 섞어 발효시킴으로써 독특한 맛과 풍미를 나타내는 동시에 원재료에 없던 새로운 영양물질과 살아있는 많은 유산균을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품”이라며 세계김치연구소에서는 “김치의 건강 기능적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구명하고, 위생·안전성이 보증된 고품질 김치 생산을 위해 요구되는 핵심 원천기술 개발 등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종균김치 표준 모델을 확립하고, 종균적용 초격차 기술에 기반해 한국 김치의 품질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며 “혁신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김치 후발국에서 생산하는 김치와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해 김치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장 소장과의 일문일답.
- '김치의 날'을 맞는 감회는.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양력 11월 22일 전후의 소설(小雪) 절기를 기준으로 김치 담그기 좋은 시기로 여겨왔다. 김치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배추, 무 등 주재료와 양념에 넣는 마늘, 젓갈 등 부재료 하나(1) 하나(1)가 모였다고 해서 11월을 상징한다. 면역 증강, 항산화, 항비만, 항암 등 건강 기능적 효능이 22가지 이상으로 많다는 상징성을 담아 22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11월 22일이라는 연속된 숫자로 돼 있어서 기억하기도 좋다. 제정된 지 4년 밖에 안됐지만 미국, 영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서 김치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김치의 날이 지구촌 기념일이 돼 더 뜻깊고 감회가 새롭다. 이제 한국인의 김치가 아닌 세계인의 김치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 김치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처음 김치를 연구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김치 미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았다. 일본과 미국 유학시절 이들 국가에서는 미생물을 미래의 강력한 자원으로 여기고 다른 나라까지 가서 미생물을 수집하는 등 국가차원의 많은 투자와 연구하는 모습을 접하며 자극을 받았다. 선진국은 그때부터 미생물을 수집하고 관리해온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발효식품 내 수많은 미생물은 앞으로 우리나라만이 보유한 독자적 유용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발효식품인 김치를 비롯한 된장, 간장 등으로부터 유용미생물을 분리하고 특성화해 자원화하는 일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 본격적인 김치·발효식품 연구활동은.
▲1996년 조선대 교수가 된 이후 우리만의 자원을 고민하던 중 김치에 있는 맛있는 미생물들을 분리해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미생물의 중요성을 모르고 알아주지도 않을 때부터 김치, 된장, 간장 등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에서 미생물을 열심히 모았다. 미국과 일본이 소리 없는 '미생물 사냥'에 나선 것을 알게 된 이상 우리나라도 누군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미생물 수집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경각심을 갖고 우리 김치에 있는 미생물들을 모아 자원화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세계김치연구소장 부임 이후에는 저온에서 관리하는 김치유산균을 중점 관리하고 있으며, 김치와 같이 저온에서 발효되는 식품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유산균 자원을 많이 확보하면 김치뿐만 아니라 발효 과채 시장 등 타 산업으로의 확장성이 매우 클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치의 우수성에 대해 말해 달라.
▲김치는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발효과학의 결정체'이다. 김치에 들어있는 유산균은 유제품 기원의 유산균들과 비교했을 때 장내 생존력이 뛰어나다. 김치에는 무수히 많은 종의 유산균이 있는데, 식물성 유산균은 일반적으로 동물성 유산균보다 산이나 알칼리 환경과 같은 가혹한 조건에서도 생존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김치 유산균의 경우 고춧가루, 생강, 마늘 등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강력한 항균 작용을 하는 데도 버티고 살아남는다. 가혹한 환경에서 잘 자란 유산균은 그야말로 생명력이 더욱 강해서 장까지 살아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 취임 2년간 주요 성과는.
▲취임(2021년 8월) 이후 관련 분야 전문가와 김치산업 현장의 R&D 기술 수요를 적극 청취하고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써왔다. 김치 종균 프로젝트를 통한 '품질혁신'으로 프리미엄 김치시장으로 산업계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생산단가 절감을 위해 양념 속넣기 장치 등 김치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단계적으로 적용해 '생산혁신'을 가져왔다. 김치의 항비만, 면역 증진, 장 건강 효능 등 건강 기능성 연구도 지속하고 있으며, 김치 가공 부산물의 친환경 처리, 김치 수출의 어려움 해소 등 김치산업계가 직면한 난제들을 기술개발로 해결하고 상생협력의 중계자로서 역할을 해왔다.
또한 국가의 미래 자원으로써 김치 미생물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김치자원은행을 새롭게 구축했다. 김치 유래 미생물인 실물자원과 이를 연구한 정보자원을 확보해 김치 종주국으로서 자원 확보를 통한 주권 강화에 힘썼다.
- 국제 공인기관으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하는데.
▲최근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 '생물자원은행 분야 국제 공인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지난해 생물자원은행 제도가 도입된 이후 유산균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성과다. 또한 저온에서 발효되는 식품인 김치는 유제품과 발효 조건이 다르지만, 그동안 중온성(30~40℃) 유산균 시험법을 적용해 왔다. 김치 품질과 발효에 큰 영향을 주는 저온성(10℃ 이하) 유산균에 최적화된 시험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KOLAS 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국제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저온성 김치 유산균에 특화된 시험법은 물론 그 시험법으로 분리한 저온생육능 유산균을 생물자원으로 보관할 수 있는 인프라까지 모두 국내 최초로 인정받았다. 국제 공신력은 물론 김치 유산균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 김치 품질 향상을 위한 과학기술 적용 사례는.
▲국내 김치제조업체는 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가 적고, 원료조달, 품질관리, 기술혁신, 마케팅 등 직능별 전문인력도 부족한 중소기업이 99%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지원을 통해 수혜 중소기업의 기초체력을 향상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2013년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지역별·종류별 김치 269종에서 3만5000종의 김치 유산균을 확보해 우수한 김치종균 27종을 기반으로 '김치종균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치종균은 김치의 맛과 품질을 향상시켜주는 우수한 유산균으로 김치 산업화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우수 종균에 대한 현장적용 기술과 발효조절 기술, 대량생산 기술 등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으로 김치산업 현장에 보급하는 상용화를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 종균 품목과 유형을 다양화해 '종균백화점'을 운영하고 종균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대량생산공정 기술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 김치 종주국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대처 방법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김치의 영양적·기능적 우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일본과 같은 김치 후발국이 무섭게 추격하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김치 종주국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려면 김치 맛과 위생 등 식품으로서의 기본 자격에 충실하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치가 세계화할수록 김치의 형태나 먹는 방법 등 변화가 생겨나겠지만 '한국 김치'의 정체성과 본질을 찾고 강화해야 할 때다.
- 김치 세계화를 위한 연구소 역할은.
▲김치가 단일 식품으로의 가치뿐 아니라 발효·건강식품이라는 상징적 속성만 내재한 상품일지라도 해외에서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류 확산으로 외국 젊은 세대들이 김치를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소비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김치가 다양한 국가의 더 많은 이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려면 김치 품질을 차별화해야 한다. 김치가 위생과 안전이 보장된 건강한 식품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고급화 전략을 앞세워 우리 김치의 맛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 임기 내 중점 추진과제는.
▲연구소 운영은 크게 '김치 발효의 과학화' '김치 산업의 선진화' '김치 가치의 자원화' 등이며 최종 목표는 '국가 김치산업 혁신 거점'으로서 김치산업을 육성·발전시키는 것이다.
'김치 발효의 과학화'는 미래에 대비하는 연구다. 김치 후발국과 차별화된 김치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김치 기능성 및 종균 개발, 발효 조절과 같은 핵심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김치 스마트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등 위생안전 확보, 스마트 포장, 장기유통기술 등 4차 산업기술을 김치산업에 접목해 김치산업의 선진화를 이뤄나가는 동시에 김치 과학·역사·문화 연구결과를 자원화해 공공 활용성을 높이고, 김치 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세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책 김치 종합 연구기관으로서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장해춘 소장은 식품공학자이자 국내 최고의 김치 전문가다. 서울대 식품공학 석·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 미시간대 미생물학과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1996년부터 조선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공공분야로는 보건복지부 건강기능식품 심의위원,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과학기술위원, 식품의약품안전처 자체 규제 심사위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기획평가위원으로 활동했다. 학술분야로는 한국식품영양과학회 편집위원장,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부회장, 조선대 김치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마이크로바이올로지 앤드 바이오테크놀로지 레터스(MBL)'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