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건 슬로건이다. 그는 당시 조시 부시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지난 20일 아르헨티나 정권도 교체됐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민은 페론주의로 불리는 포퓰리즘을 심판했다. 아르헨티나 물가는 살인적이라는 평가다. 국민 10명 중 4명은 빈곤 상태에 빠져있다.
우리는 어떤가. 가계와 기업 관련 각종 지표에 경고등이 들어온다. 중소기업과 가계가 빚을 못 갚으면서 은행 연체율도 상승세다. 서민들은 자금난에 빚 돌려막기 악순환에 들어갔다. 차주가 연체한 대출금을 갚기 위해 재대출을 받는 카드론 대환대출역시 48% 늘었다. 10월말 현재 9개 신용카드사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490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47.5%, 올 9월 대비 6.3% 증가했다. 소상공인들 가운데 다중채무자도 늘고 있다.
기업 상황도 마찬가지다. 원금은 물론 이자도 갚지 못한 기업이 급증세다. 9월말현재 4대 은행의 기업대출 중 무수익여신은 작년 12월 대비 29% 늘었다. 경기침체에다 고금리고물가가 겹치면서 한계기업이 속속 생겨나는 것이다. 1:29:300으로 요약되는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각종 데이터와 지표는 징후 중 하나다. 임계점에 도달하지 전 막아야 한다.
급기야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이 등장했다. 뒤늦게 정부의 시장 개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방책이다. 사실 정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변수를 이유로 사실상 물가관리에 실패했다. 곡물가격과 유가 상승에 따른 수입가격 인상에 속수무책이었다. 장바구니 체감 물가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용산에 입성했다. 성적표는 어떤가.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단적이 예다. 지난 1년 6개월 국정에 대한 냉엄한 평가를 받았다.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나온다. 권력을 지었지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상식을 잠시 잊었다. 국민은 승자독식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렇다. 민심은 항상 옳다. 민심은 곧 알파고이고, 챗GPT다. 개인은 연약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모인 민심의 바다는 강력하다. 자체적으로 사회적 평형수 역할을 한다. 밸런스를 맞추는 기제다.
용산의 기류는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를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각 부처에 핵심 민생 정책 개발이라는 하명이 떨어졌다. 이제는 이념전쟁을 뒤로 하고 '물가 및 이자율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물가를 포기한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장이 실패하면 일정 부분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 말로만 민생이 아닌, 현장 민의를 직접 듣고 실천하는 민생정책을 펼쳐야 한다. 지금 용산에 필요한 시대정신은 '공감'이다. 대한민국은 검찰이 만든다는 선민의식을 버려야, 정부가 산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 취지는 많은 국민과 만나기 위함 아니었던가. 먹고 살기 힘든 대다수 국민들은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다. 마음편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민생은 곧 물가다. 지출은 줄여주고, 수입은 늘려주는 경제 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가치는 국민과의 공감능력이다.
김원석 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