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학교에 처음 가던 날, 군대에 입대하던 날, 처음 차를 몰고 나간 날의 설렘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여러분의 첫 차는 무엇인가요? 제 첫 차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1989년형 현대자동차 엑셀이었습니다. 7년 된 소형차였지만 가난한 사회초년생에게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죠.
3년 반 동안 잘 탔던 이 차는 2000년에 대우 레조를 처음 만나면서 헤어지게 됩니다. 당시에는 LPG 차를 택시와 장애인용으로만 허용했는데요, 일반인이 살 수 있는 7인승 LPG 차로 현대정공 싼타모, 기아 카렌스에 이어서 대우 레조가 나오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이때 나온 대우 레조를 장거리 시승을 통해 접하고 괜찮다는 확신이 들어서 저의 인생 첫 차로 맞이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엑셀은 저의 '인생 첫 차'이고, 레조는 제 이름으로 산 '인생 첫 차'였습니다.
레조는 저의 첫 직장인 '월간 자동차생활'에 1년 동안 '즐거운 미니밴'이라는 이름으로 연재 기사에 등장했습니다. 세단과 해치백밖에 없었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생소한 소형 미니밴을 타면서 겪었던 다양한 체험을 연재물로 작성한 것이죠.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저의 두 번째 직장인 '월간 모터트렌드'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수입차로 바꾼 편집장이 “어떻게 100마력도 안 되는 차를 몰고 다니냐”라며 수시로 놀리던 2007년에, 모았던 적금을 깨서 렉서스 IS250을 산 것이죠. 레조는 아버지가 타시도록 하면서도 관리는 제가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이 차를 아껴서 잘 타셨는데, 2014년에 돌아가시면서 레조와 제가 헤어질 '위기'를 맞이합니다. 2015년에 3세대 BMW 7시리즈를 들이면서 보유 차가 3대가 되어 부담을 느낀 것이죠. 그런데 레조를 팔려고 보니 중고차 가격이 30~40만원 밖에 안 됐습니다. 이 정도 가격이면 폐차해서 받는 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죠. 고민 끝에 레조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고 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레조와 함께한 세월이 올해로 23년째가 됐습니다. 제 레조는 아는 이들은 한눈에 알아봅니다. 출고 반년 정도 되었을 때 특수 도색을 한 덕분인데요. 당시 듀폰에서 나온 '크로마루전'이라는 특수 도색을 해서 여러 색깔이 보이거든요. 듀폰에 따르면 일곱 가지 색상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여러 메탈릭 성분을 도료에 섞어서 차를 보는 방향에 따라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금색 등으로 보이는 거죠.
한때 티뷰론이나 쏘나타 등에 이 도료를 입한 분들이 조금 있었는데, 제가 아는 한 레조는 이 차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레조를 타는 걸 아는 이들은 도로에서 이 차를 바로 알아봅니다. 이게 꼭 좋은 건 아닙니다. 제가 가는 곳이 그대로 노출되거든요. 언젠가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후배에게서 “선배 지금 어디쯤 지나가시죠?”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올해는 레조를 출고한 지 23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연식은 오래됐지만 주행거리는 15만3637㎞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때 제 차가 세 대였고(지금은 두 대), 시승차도 자주 탔기 때문에 연식에 비해서는 주행거리가 짧은 편입니다.
이렇게 제 곁에 있던 레조를 세상에 다시 알리게 된 건 '윗분'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매체에 연재 기사를 실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셨고, 저는 '올드카 라이프'와 '체험기'라는 두 가지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체험기는 타이어 관련해서 두 가지 기사를 이미 출고했고 올드카 라이프는 이 기사가 처음인데요, 이 기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레조, IS250 그리고 전에 잠깐 제 곁에 있었던 3세대 BMW 728i와 함께 한 얘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레조를 타느냐”라며 놀라곤 하는데요. 저도 이 차를 이렇게 오래 갖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첫 직장에서 1년간 연재한 후에 다시 기사에 올리는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죠.
얼마나 오래 연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레조는 제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제 곁에 함께 할 거라는 거죠. 제 이름으로 산 '첫 차'라는 의미가 있고, 이 차와 같이 한 소중한 추억들이 많거든요, 앞으로 이어질 저의 올드카 라이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자신문인터넷 임의택 기자 ferrari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