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다양성을 얘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떼루아(Terroir)'다. 프랑스 어로 '땅'을 뜻하는 단어로 와인 고유의 특성을 결정하는 토양이나 품종, 양조기술 등 환경 요소를 통칭하는 의미로 쓴다.
우리 술 '약주'에도 떼루아가 있다. 약주는 발효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향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향은 누룩의 구수한 향이다. 이때 어떤 종류의 누룩인지 혹은 어느 지방에서 만든 누룩인지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발효를 통해 사과향이나 배향과 같은 은은한 과실향을 풍기는데 대개 저온 숙성시킨 약주에서 향미가 풍부한 편이다.
약주를 오롯이 즐기려면 가장 먼저 눈으로 빛깔을 살펴 술의 농담을 예측할 수 있다. 전통 약주는 선명한 황금색을 띠는데 색이 옅다면 담백한 맛을, 색이 짙을수록 진한 맛을 가진다. 약재나 꽃잎 등 부원료에 따라 술의 색이 달라지기도 한다. 전통 약주 중에는 빛깔로 지어진 술 이름이 있기도 하다. 술빛이 흰 아지렁이와 같다는 비유에서 붙여진 '백하주'나 푸른 파도와 같은 색을 지녔다는 '녹파주' 등이다.
약주의 빛깔과 향을 맛봤다면 다음은 맛이다. 전통약주는 대개 단맛과 신맛이 강한 편이다. 과거 고전 양조방법대로 술을 빚으면 너무 시거나 달아 현대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맛은 약주의 고유한 특징이기 때문에 와인과 비교해 너무 달거나 시다고 단정지어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약주의 단맛은 어느 정도 발효가 끝난 후 쌀을 보충하거나 쌀과 누룩을 함께 추가해 재차 발효를 하는 덧술법으로 강해진다. 약주의 신맛은 발효 경과에 따라 젖산, 구연산 등 다양한 유기산에 의해 생기는 자연적인 산미로 온화하고 상쾌한 맛을 낸다.
고전서인 규합총서에서는 '밥먹기는 봄같이하고 국먹기는 여름같이하며 장먹기는 가을같이 하며 술먹기는 겨울같이 하라'고 나와있다. 약주는 보통 차갑게 즐겨 마시지만 구수한 향을 풍부하게 느끼고 싶을 땐 살짝 데워서 마셔도 좋다. 약주를 마실땐 온도 편차가 적은 도자기잔으로 마시는게 좋고 유리잔을 사용한다면 입구가 바닥보다 넓은 것으로 골라야 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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