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산업을 취재하다보면 새로운 디바이스 등장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애플이 지난 5월 혼합현실(XR) 디바이스인 비전 프로를 공개한 데 대해 디스플레이 업계가 환호한 이유도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이라는 신시장 개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올해 전방 시장 침체를 피하지 못했다. 스마트폰과 TV를 포함해 대부분 전자기기 시장이 포화하고 수요가 줄면서 큰 부침을 겪었다. 후방산업인 소재부품 업계도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기기 등장을 바라는 건 이미 포화한 디바이스로는 시장 파이를 더 키울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이 가속화하면서, OLED 적용대상은 스마트폰, TV뿐만 아니라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노트북·태블릿 등의 중형 디바이스로 확대되고 있다. 애플은 내년 출시하는 아이패드 프로에 OLED를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에는 맥북에도 OLED를 채택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에 LCD를 적용하던 기기를 OLED로 전환하는 것이다보니, AR·VR과 같은 새로운 디바이스에 기대감과 결이 다르다. 태블릿, 노트북는 시장 확대 측면이 있지만 대체 수요에 더 가깝다. AR·VR용 디스플레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수천 PPI(인치당 픽셀 수)급 초고해상도를 구현해야 하는데다 경량화해야 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공정이 필수다.
갈증하는 만큼 전략적인 투자와 개발을 해야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결국은 개발 및 상용화 단계를 뛰어넘어 양산이 가능해야 한다. 올레도스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업으로 꼽히는 소니도 애플 비전프로에 메인 디스플레이 올레도스 패널에 대해 매우 낮은 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중국 씨야가 공급망에 진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이들과 경쟁을 이겨내고 AR·VR용 디스플레이 양산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미래 투자에는 적극적인 편이다.
내년 초에는 올해 공개된 비전프로가 출시된다. 삼성·구글·퀄컴이 합작해 준비하고 있는 VR 기기도 내년 상반기 공개가 유력하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용 디스플레이 출하량이 올해 1600만대에서 2028년 1억190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OLED는 일본이 먼저 개발했지만 대량 생산에 성공한 건 우리나라였던 것처럼 디스플레이 업계가 선제적 대응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