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2〉경계를 허무는 곳에 창의가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예술작품은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성을 가진 작품을 본질로서 '에르곤'(ergon)이라 하고 작품을 둘러싼 비본질적인 주변을 '파레르곤'(parergon)이라 구분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의 그림 그 자체는 에르곤이고 그림을 둘러싼 액자는 파레르곤이다. 액자는 그림, 글씨, 사진 따위를 끼우는 틀이다. 작품을 위해 전적으로 봉사한다. 작품과 그 주변 환경을 구분하여 작품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현실과 경계를 긋는다. 그림의 훼손을 막고 전시, 운송, 보관을 쉽게 한다. 액자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액자는 예술작품을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할까.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의견을 보자. 예술작품도 작품 이외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복제된 작품을 볼 수 있지만 전시회에서 보는 감동에 미치지 못한다. 기쁨과 슬픔 등 관객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액자도 마찬가지다. 형태와 기능에 따라 예술작품과 불가분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작품에 녹아든다. 어떤 액자를 쓰는지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올릴 수 있고 떨어트릴 수도 있다. 액자의 기능과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고 의미와 역할을 다시 봐야 한다.

작품과 액자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경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작품은 액자 안에 갇혀 현실과 소통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지 못한다. 사실을 재현하고 모방함에 그친다. 액자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도 작품을 돋보이는 조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작품과 액자 사이에 주종관계가 고착되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
〈그림작가 이소연 作〉

작품과 액자의 경계를 허물면 어떨까. 영국 작가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는 2018년 경매에서 약 16억원에 낙찰되었다. 그 순간 뱅크시는 액자에 장착해둔 파쇄기를 원격으로 작동시켰다. 그림의 절반이 액자 아래쪽으로 잘려나갔다. 이 작품은 잘린 형태 그대로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3년 뒤 다시 경매에 나왔고 약 301억원에 낙찰되었다. 작가 윤병락은 큼직한 사과들을 액자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그림으로써 손에 잡힐 듯 실감나게 표현했다. 옥외 디지털 광고판은 어떤가. 입체 제작된 광고는 마치 광고속 주인공이나 장면이 화면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수십년 동안 액자를 만들어온 임기연 작가는 작품을 품지 않은 액자만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작품은 액자 속을 나오려 하고 액자는 작품과 어우러지고 스스로 작품이 되려 한다. 작품과 액자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서로 끊임없이 넘나들고 소통하면서 창작의 수준과 가치를 높이고 있다.

우리 삶의 경계는 어떨까. 원시인은 동굴에 살았다. 동굴에 있으면서 바깥을 내다볼 때에 편안함을 느꼈다. 동굴 입구는 원시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경계로서 액자 역할을 한다. 동굴 속의 삶이 편안함을 주지만 인류의 발전은 동굴을 뛰쳐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예술작품과 액자의 경계가 흐려지듯 우리 삶의 이상과 현실, 진짜와 가짜, 현실과 가상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혀야 역사는 발전한다. 현대인은 대부분의 일상을 온라인에 접속해 일상을 살아간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무너지면 혼란하지만 창의가 더해지면 혁신이 되어 미래를 만든다

현대인의 삶에는 또 다른 경계가 있다. 학력, 경력으로 쌓은 인맥과 경제력의 경계다. 그것이 고착되면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성장이 정체된 시대엔 갈등, 대립과 분열을 불러온다. 산업화, 정보화를 거치면서 끄집어낼 수 있는 창의에 한계가 왔다. 소수의 인재가 공동체를 견인하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경계 너머 웅크린 다수의 아이디어를 액자 속에서 끌어내야 한다. 경계를 무너트리고 배려와 협력을 높여야 진정한 창의가 샘솟는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