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복합위기(polycrisis)'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다중위기'로도 번역되는 이 용어는 기후 위기, 팬데믹, 전쟁, 권위주의 부상 등 세계적으로 다양한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뜻한다.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패권 경쟁이 과거 냉전과 다른 점은 반도체, 인공지능(AI), 우주 등 첨단 기술이 경제 뿐만 아니라 국방 안보에도 필수 역할을 함에 따라 과학기술이 패권 경쟁의 핵심이 됐다는 점이다.
지난 해 말 공개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의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이 오랫동안 우위를 점해 온 수중전과 우주 분야를 따라잡고 AI 분야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면 아시아와 세계의 힘의 균형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서 “극심한 미중 경쟁은 '뉴 노멀'”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브라질 등의 국가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함에 따라 유권자들이 무기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대안으로서 권위주의적 극우 포퓰리즘을 찾고 있어 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재생에너지 기반의 파괴적 혁신(clean disruption)을 예측해왔던 토니 세바는 2020년 발간된 '인류를 다시 생각함(Rethinking Humanity)' 보고서에서 인류 문명의 미래를 전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AI, 생명공학, 센서·사물인터넷(IoT), 배터리, 로봇 등 주요 기술들이 수렴해 글로벌 경제 바탕인 5개 기반 영역(정보, 에너지, 운송, 식품, 소재)과 주요 산업이 완전히 변화한다.
문명이 번성하려면 발전 잠재력을 규정하는 기술적 역량과 더불어 가치, 제도 등 사회구성 역량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베네주엘라 출신 경제학자인 카를로타 페레즈는 18세기 산업혁명부터 총 다섯 차례의 기술 혁명을 분석했다. 페레즈에 따르면 기술 혁명은 도입기(installation)와 전환기(turning point)를 거쳐 배치기(deployment)를 통해 장기적 번영으로 이어진다.
현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디지털 혁명(age of information and telecommunications)의 전환기에 속한다. 전환기에는 정부의 선도적이고 적극적인 기술 혁명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임무지향혁신(mission oriented innovation)은 공공과 민간의 공생적(symbiotic)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기후 위기, 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혁신 패러다임이다. 인류가 다중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임무지향 혁신이 필요하다.
임무지향혁신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와 연계해 담대한 임무를 설정하고 다양한 영역을 결합해(cross-sector)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써 다수의 연구혁신(R&I) 프로젝트를 도출한다.
임무지향혁신을 위한 정부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넘어 민간부문, 시민사회 등 다양한 혁신 주체들과 협력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창출하고 형성하는 기업가적 임무지향정부(mission-oriented government)가 돼야 한다.
임무지향혁신이 공공-민간 파트너십의 공생적 성격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수십년 간 세계적 신자유주의 추세로 인해 공공과 민간의 관계가 기생적이었다는 비판적 시각 때문이다.
임무지향혁신은 공공과 민간이 위험을 분담해 기술혁신에 함께 투자하고 보상을 공유하는 '위험과 보상의 사회화(socializing risks and rewards)'를 지향한다.
임무지향혁신의 주창자인 UCL 혁신과 공공목적연구소(IIPP) 마리아나 마주카토 교수는 임무지향혁신의 예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 100개의 탄소중립 도시 건설을 제시한다.
2023년 기준 도시 인구는 44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5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100년에는 80% 이상인 약 90억명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세계적으로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도시화 추세를 고려하면, 지속가능발전은 지속가능도시의 건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도 도시가 지구적 지속가능성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지속가능발전에 있어서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속가능도시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스마트지속가능도시(Smart Sustainable Cities)에 대한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지속가능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목표로 추진 중인 비전 2030의 핵심이다. 네옴은 새로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네오(Neo)와 미래를 의미하는 아랍어 무스타크발(Mustaqbal)이 합쳐진 단어로 도시의 미래지향성을 잘 보여준다.
네옴시티는 더라인, 트로제나, 옥사곤 등 세 개의 도시로 구성돼 있다. 옥사곤은 주거와 첨단산업단지가 복합된 부유식 해상도시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형 도시가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공간이 되지 않으려면 미래형 도시의 기술 인프라와 함께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병행돼야 한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에 거주하게 되므로 미래형 도시는 새로운 인류 문명을 선도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하고 번영된 인류의 미래는 지속가능발전, 민주주의 등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내재된 미래형 도시의 건설과 전 지구적 확산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형 도시와 임무지향혁신을 결합하는 것이 필수다. 각국 정부가 임무지향정부가 되어 UN 등 국제기구의 틀 안에서 지속가능한 미래형 도시, 모두를 위한 미래형 도시를 추진한다면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21세기의 대표적 문샷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선우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융합보안대학원 교수 sunkim11@skku.edu
〈필자〉2022년 11월부터 성균관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산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협의회(ICLEI·이클레이) 한국사무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부터 경기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2022년부터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내 우주사이버보안포럼 간사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전라북도의 새로운전북 자문위원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