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관계자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TSMC와 일본의 협력 확대가 확실히 체감됐습니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미콘 재팬 2023'에 참석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의 소감이다. 세미콘 재팬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 단체 'SEMI(옛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가 여는 일본 최대 반도체 전시회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계가 총출동하는 자리라, 업계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TSMC는 2022년 일본 구마모토현에 1공장을 건설, 올해 가동에 돌입한다. 동시에 같은 구마모토현에 2공장도 착공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3공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TSMC를 앞세워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꿈꾼다고 한다.
일본의 부활은 경계할 부분이지만 이것이 가능한 이유부터 짚어야 한다. TSMC는 대만 기업이다. 온 세계가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충하려는데, TSMC가 일본으로 돌아선 건 중국 때문이다.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할수록 대만 내 TSMC 팹에 대한 고객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좀 더 지속 가능한 생산거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보다 안전하고, 탄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가 갖춰졌다. 지리적 인접성도 매력적이다. TSMC는 일본에서 반도체 칩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길 원한다.
일본에는 유수의 전자·정보기술(IT)·자동차 기업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반도체 칩 생산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팬데믹과 전쟁 등으로 반도체 공급부족(쇼티지)이 생기자 전방 산업 타격이 컸다. 고객이 반도체 칩을 못 받았다. 일본은 급히 자국 내에서 칩을 생산해야했고, TSMC와 손을 잡았다. 일본은 반도체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길 원한다.
TSMC의 일본행은 이같은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안정된 공급망' 구축을 최우선으로 둔 행보다. 신속한 공급망 조성을 위해 일본은 TSMC에 수조원에 달하는 설비 투자 지원금을 제공했다. 유례없고 강력한 보조금 정책이다. 일본 소부장 기업도 주변에서 지원 사격에 나섰다. TSMC와 일본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는 관계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부족한 점은 소부장이다. 외산 의존도가 높고 수입량이 많아 공급망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3개 소재 수출 규제 때 실제 경험했다. 그나마 글로벌 소부장 기업이 최근 한국 진출을 시도하지만 대부분 연구개발(R&D)과 기술 지원 중심이다. 외국인이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면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예산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은 반도체 생산 거점의 핵심이 되는 용인·평택 클러스터 인프라 예산이 사실상 '0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TSMC라는 한 기업에 수조원을 쏟는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은 설비투자와 R&D 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량에 따른 세액 공제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은 TSMC로 반도체 공급의 급한 불을 끌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토요타·소니·소프트뱅크 등이 공동 설립한 반도체 기업 래피더스를 키우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다. 자국 중심 반도체 생산 공급망 강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급부상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위협이지만, 실제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국내외 기업 투자를 견인할 반도체 예산은 정쟁으로 위태롭다. 정부는 산업계 민간 투자에만 매달릴 뿐이다. 당장 팬데믹·전쟁·미중갈등·일본 수출 규제와 같은 '대외 변수'가 재현된다면 대한민국은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 할 수 있을지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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