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R&D 예산삭감 후폭풍 "반토막 난 협약서 수용하라"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지속 연구개발(R&D) 사업을 수행하는 중소기업은 올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연구비가 최대 50% 삭감된 협약 변경서에 서명해야 한다. 해당 기업만 3000여개가 넘는다. 중기부 R&D 예산이 20% 이상 줄어든데 따른 후폭풍이 불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기부는 이번주 권역별 중소기업 R&D 협약변경 설명회를 진행한다. 2024년도 중소기업 R&D 사업 예산이 확정됨에 따라 정부 출연금을 조정하고 협약변경 사항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올해 편성된 중기부 R&D 예산은 1조4097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2.7% 줄었다. 딥테크 분야 R&D는 확대됐지만, 중소기업기술협력개발, 소재·부품·장비 전략협력 기술개발 등 다년간 사업을 진행하는 계속과제는 6개월치 예산만 편성했다.

중기부는 올해 계속과제 예산이 절반으로 줄어든 만큼 연구개발기관 간 협의를 거쳐 사업별 협약변경 수용·중단신청·불응 등을 판단하기로 했다. 예산을 이유로 변경·중단되는 경우에 대해선 제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과제수행 중소기업이 협약변경을 수용하지 않으면 올해 연구비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는 점이다. 자체 R&D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이 기존 과제를 이행하려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반토막 난 협약 변경서를 수용해야 한다. 협약변경이 필요한 사업은 창업성장기술개발,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 등 24개로, 이 중 22개가 올해 예산이 50%만 반영됐다. 수행 기업 수는 3000개가 넘는다.

R&D 예산 삭감 이후 후속 조치를 위한 사전작업도 시작됐다. 중기부 R&D 수행기관인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은 최근 조직개편을 거쳐 협약변경팀을 신설했다. 3000개 이상 중소기업의 협약변경을 관리해야 하고, 행정소송 부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전담 부서를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기정원이 중소기업 R&D 수행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연구개발비 감액에 대해 85.6%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들은 올해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지면서 불안감이 크다. 실제로 중소기업 기술개발사업 종합관리시스템 홈페이지에는 R&D 통합공고 일정과 정부 출연금 감액 관련 문의가 이어졌다. 연구인력 고용을 비롯해 한해 사업계획 수립이 시급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R&D 예산 삭감 소식만 들릴 뿐 구체적 내용 공지가 늦어져 불만이다.

16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R&D 협약변경 설명회에서도 불안감에 처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400석으로 마련된 행사장이 일찌감치 가득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참석자는 “협약변경에 대한 결과는 정해져 있고 중소기업은 그냥 받아들이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중기부는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R&D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소기업 R&D가 유사·중복된다는 지적에 따라 조정했고, 혁신 기술에 대한 R&D 투자는 늘리는 만큼 R&D 다운 R&D를 수행하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협약 변경 필요한 중소기업 R&D 사업 목록 - 출처=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협약 변경 필요한 중소기업 R&D 사업 목록 - 출처=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