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저출산은 나쁜 것일까. 옛 세대가 만든 결혼·출산과 육아의 틀을 깨니 창의적이다.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지만 행복을 이루긴 쉽지 않다. 이혼율이 말해주듯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가정을 만들고 지키는데 쓸 정신적, 물질적 비용을 아껴 삶의 다른 가치를 찾는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위해 아이디어를 펼치니 혁신을 위한 창의도 증가한다. 장기적으론 어떨까. 2022년 혼인건수는 19만1690건(이혼건수는 9만3232건)으로 1997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 15~49세의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수 평균(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0.78명에 불과하다. 인구감소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나라를 지킬 군인과 산업현장을 지킬 인력이 줄고, 지방소멸과 고령화 등 사회적 위기를 동반한다.
원시시대엔 남자가 사냥하고 여자가 채집해 식량을 충당했다. 결혼·출산과 육아는 개인만 아니라 공동체 생존에 직결된 노동력 재생산 체계였다. 결혼·출산은 당연했고 육아는 공동체가 맡았다. 농경시대엔 노동력이 농업만 아니라 병역, 부역과 세금의 원천이다. 결혼·출산과 육아는 가문의 의무와 책임이었다. 산업시대엔 달라졌다. 생활 향상과 함께 인구가 가파르게 늘었다. 정부는 인구증가가 식량생산을 앞질러 빈곤을 부른다며 출산을 억제했다. 출산과 육아 책임은 개인에 전가됐고, 인구감소가 계속되면서 국가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비혼·저출산 원인은 뭘까. 표면적 이유는 도시화와 개인주의, 경기침체와 고용감소, 교육비와 집값상승이다. 구조적 원인이 더 중요하다. 결혼, 출산과 육아를 개인에게 맡긴 시스템의 붕괴다. 남성은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역할분담도 의미를 잃었다. 사랑만으로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일생을 망칠 순 없다. 가정 외에 일, 취미 등 다양한 것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다. 출산은 자유지만 태어난 아이는 키워야 하는데 대충 키우고 싶진 않다. 그런데 디지털로 실시간 자랑하는 치열한 육아경쟁에 뛰어들 자신이 없다. 경제도 좋아질 기미가 없다. AI 등 기술이 일자리를 뺏는다면 자녀의 미래도 없다. 성인이 된 자녀를 보살필 자신도 없고, 노후에 자녀의 보살핌을 기대하긴 더욱 어렵다. 육아 부담을 피하려면 출산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라지만 애국심만으로 답을 찾긴 어렵다. 그런 생각이 온라인에 쌓이고 쌓여 공감을 얻고 있다.
민간역량이 증가하면서 정부와 대기업이 창의를 독점하는 시대가 저물었다. 고용감소와 창업증가로 스스로 창의를 발휘해야 살 수 있는 시대다. 비혼과 저출산은 가정 대신에 다른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창의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인구규모가 줄어 혁신 재료인 창의의 총량을 줄게 만든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비혼·저출산을 '요구사항 있는 준법투쟁' 정도로 보고 경제적 지원책으로 접근한다. 한마디로 착각이다. 가정은 개인의 삶을 위한 안식처 역할을 잃었다. 가정이 주는 부담에서 떠나 다른 삶의 가치를 찾는다. 돈 몇 푼에 돌아설 그들이 아니다. 그러니 정책에도 창의가 필요하다. 출산을 원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는 가정을 핵심 목표로 해야 한다. 가정의 구축과 유지에 따른 물질적 비용에 더하여 정신적 부담을 낮춰야 한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만 분쟁지역이 아니다. 일상의 전쟁터가 가정이다. 가족 분쟁, 갈등과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결혼제도 외에 사실혼, 동성혼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과 지원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출산과 육아는 개인을 넘어 국가책임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고 정책을 펴는 것이 좋겠다.
정부는 가정을 이득은 없고 고통만 있는 곳, 빈곤은 줄었으나 갈등만 있는 곳으로 방치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진단과 처방 없이 결혼, 출산과 육아에 전념할 것을 요구할 순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