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화산 폭발로 묻혔던 고대 로마의 파피루스가 인공지능(AI)으로 베일을 한 꺼풀 벗었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네이처 등에 따르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혔던 두루마리를 해석하는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챌린지'에서 대학생 3명이 두루마리의 5%를 해석해 내 우승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 폼페이를 덮어버린 AD 75년의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 이 날의 폭발은 폼페이를 완전히 파괴하고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도시 헤르쿨라네움까지 덮쳤다. 이 마을의 호화로운 로마 도서관들 역시 뜨거운 열기와 화산재, 경석을 피하지 못했고 그 안에 있던 수백 개의 파피루스는 마치 타다 만 장작처럼 돌돌 말린 채로 까맣게 그을렸다.
이 파피루스들은 18세기 발굴 작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인 소유로 추정되는 저택에서는 1000여 권의 두루마리 혹은 잔해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탄화된 파피루스에 검은색 잉크로 쓰여 있던 글들은 읽기 위해 여는 순간 산산조각나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 수은을 붓고 혼합 가스를 뿌리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됐지만 모두 두루마리를 훼손시킬 뿐이었다. 그나마 비단실로 하루 1인치씩 열어 젖히는 방법이 효과를 봤지만, 읽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연구팀들은 두루마리를 디지털 방식, 즉 가상으로 풀어내고, 파피루스 섬유의 변화를 통해 잉크를 감지하는 알고리즘을 떠올렸다. 다만 이를 통해 전체 캐시를 스캔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 실현이 어려웠다.
이에 고대 로마의 두루마리 연구에 20년간 매진해온 컴퓨터 과학자 브렌트 실레스와 깃 허브 최고경영자(CEO)인 냇 프리드먼이 실리콘 밸리 후원자들과 함께 지난해 3월 총 상금 100만 달러를 걸고 '베수비오 챌린지'를 열었다.
영국 옥스퍼트셔에 있는 국립 싱크로트론 과학 시설 '다이아몬드 라이트 소스'의 입자 가속기에 촬영한 두루마리의 고해상도 CT 스캔 이미지에서 텍스트를 가장 많이 추출한 이들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챌린지다.
그리고 5일 챌린지의 우승자가 가려졌다. 루크 페리토르(미국), 유세프 네이더(독일), 줄리안 쉴리거(스위스) 3명으로 구성된 대학생 팀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두루마리 전체 5%에 해당하는 2000개 이상의 그리스 문자를 뽑아 내 70만달러를 획득했다.
가장 먼저 추출된 단어는 페리토르가 뽑아낸 '보라색'이라는 뜻의 '포르피라'(porphyras)였다. 지난해 전직 물리학자인 케이시 핸드머가 두루마리에서 그리스 문자 모양으로 금이 간 진흙 같은 희미한 질감을 발견했는데, 이를 기계 학습 알고리즘에 훈련시켜 뽑아낸 단어다. 이어 네이더가 텍스트의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했다.
추가로 음악, 케이퍼, 즐거운 맛 등 단어들이 추출됐다. 즐거운 맛과 광경에 대한 내용으로 추정되며 플루트 연주자로 추정되는 크세노파네스(Xenophantus)라는 이름도 나왔다.
앞서 연구된 내용과 종합하면 해당 두루마리는 기원전 341년~270년까지 살았던 아테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추종자 필로데무스의 글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는 아직 스캔하지 않은 두루마리 말고도 이집트 미라를 감싸고 있는 파피루스 등 해석할 수 없는 고대 문헌 여러 부분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