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를 위조해 진짜인 것처럼 유통한다. 저명 화가의 그림을 베껴 진짜라고 속여 판다. 있지도 않은 사실로 가짜뉴스를 만든다. 진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공동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범죄이고, 가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보자. 동굴 안에 죄수가 묶여 있고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있다. 누군가 탈출해 바깥세상을 보고 돌아와 진짜세상을 찾았으니 가짜세상에서 나가자고 했다. 동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저렇게 생생한데 가짜일리 없다며 믿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짜일까. 집단적인 착각에 빠져 가짜세상을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의 삶은 오프라인에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로 확장한다. 그곳은 오프라인을 본뜬 가짜세상이다. 그곳에서 쇼핑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일을 한다. 가상인간, 아바타 등 분신이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가 가치와 신뢰를 더하면서 삶의 공간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획득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진짜를 베꼈지만 그를 능가하는 가짜가 있다. 생쥐와 미키마우스를 보자. 생쥐는 질병을 옮기는 혐오스런 작은 동물이다. 미키마우스는 생쥐를 본뜬 가짜지만 모든 어린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다. 테마파크, 애니메이션, 장난감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긴다. 진짜를 제치고 가치와 신뢰를 얻었다. 사진작가 안드레아 거스키는 아름다운 해질녘을 찍은 일몰사진('Untitled II')을 출품했다. 그는 전시회 도록에서 'Untitled II'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고 카메라를 들었다. 도록은 기껏해야 3만원에서 5만원의 가격에 팔린다. 그러나 도록에서 'Untitled II'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고 찍은 사진('Untitled XVII')은 수백 배의 가치를 더한다. 가짜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화가 데미안 허스트는 형형색색의 작은 원으로 가득한 그림 '화폐'를 1만점을 제작했다. 모두 디지털로 전환해 대체불가능 토큰(NFT)으로 만들었다. 고객에게 1점당 2000달러(총 2000만달러)에 판매하면서 종이 작품과 NFT 중에서 선택하게 했다. 그 중 NFT를 선택한 고객 4851명을 위해 종이 작품 4851점을 직접 불에 태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손에 잡히는 진짜는 불태워지고 가상으로 존재하는 NFT만 남았다. 디지털 작가 매튜 스톤은 투명 유리판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여러 패턴으로 컴퓨터에 저장했다. 3D소프트웨어로 합성해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고 특수 프린터를 써서 캔버스에 찍어냈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가 진짜일까, 아니면 캔버스에 출력한 것이 진짜일까.
가짜가 신뢰를 얻으면 진짜보다 더 높고 깊은 '아우라'를 가진다. 도로가 아무리 좋아도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면 가치를 잃는다. 자본주의 세상도 그렇다. 성장을 멈추면 갈등과 분쟁 등 온갖 문제점이 드러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로 시장을 끊임없이 넓히려는 이유다. 처음엔 오프라인에서 팔던 상품을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에서 싸게 파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미래엔 거기서만 파는 고유한 상품이 나와야 한다. 나를 위해 일하는 아바타에게 백만원 짜리 명품 의류를 입힐 수 있지 않을까. 가죽과 천으로 만들지 않은 가상 의류 신상품이다. 우리는 게임아이템을 돈을 주고 산다. 오프라인에선 쓸모없지만 온라인에서 게임을 재미있고 쉽게 하기 위해선 필요하다. 미래에 그런 상품이 많아지고 거래가 활성화되면 더는 거품이 아니다. 가짜의 아우라가 만드는 또 하나의 실물경제다. 우리나라 디지털 경제가 성장할지 여부는 여기에 달려있다.
나쁜 가짜와 좋은 가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가짜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묻고 찾아 공동체의 가치를 더하고 신뢰를 얻으면 '진짜를 능가하는 창의'가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