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14〉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첫 제정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대토론회'가 2005년 12월 20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렸다. 전자신문 DB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대토론회'가 2005년 12월 20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렸다. 전자신문 DB

“한마디로 시기상조입니다.”

과학기술처가 1986년 2월 소프트웨어(SW)산업 발전을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자 컴퓨터 업계 다수가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국내 SW업계는 “단속보다 초보 단계인 국내 SW산업 발전을 위해 선진기술 도입이 더 시급하다”면서 “정부가 왜 앞장서서 이 법을 제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 당시 SW 보호 문제는 국가 과제였다. 미국과 일본 등이 정부에 SW 보호를 강력히 요청해 왔다. 미국은 1981년 한·미 통상장관회의에서 SW 보호를 요청한 데 이어 1984년 10월에는 통상관세법 제301조를 개정, 지식저작권 보호가 미흡한 국가에 대해 수입 규제와 관세율을 인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과학기술처 최영환 전 차관(당시 기술정책실장)의 증언. “당시 컴퓨터업체나 일반인 사이에서 불법 복제한 프로그램을 공공연히 유통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미국 상무성은 이를 막아 달라는 서한을 정부에 보냈고, 주한 미국대사관 상무관은 자국 대표단을 데리고 와 개선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 시절 다수는 SW를 하드웨어(HW)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다. HW를 구입하면 SW는 당연히 주는 것으로 인식했다. SW를 무단 복제해서 사용해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를 단속할 법적 근거도 없었다.

과학기술처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1986년 국내 SW산업을 우리 실정에 맞게 발전·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내 처음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에 대한 권리보호와 기간, 프로그램 등록, 권리 침해 시 피해 보상 등을 법안에 담았다. 과학기술처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그해 정기국회에 법안을 상정, 입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4월 19일 한국정보산업연합회는 과학기술처에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에 관한 건의서'를 제출했다. 연합회는 이 건의서에서 “국내 SW산업 발전 속도를 감안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시행 시기를 1988년 1월로 연기하고 법안에 SW산업육성책을 마련하는 등 국내 실정에 맞게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월 21일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주요 경제현안이던 미국 통상법 301조와 관련한 통상문제를 일괄 타결했다고 서울과 미국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이날 김경원 주미대사(전 대통령 비서실장)와 클레이턴 야이터 미국 통상대표부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그해 9월 정기국회에서 저작권법을 개정, 외국인 저작권을 보호키로 했다. SW의 경우 별도 법안을 제정하고 저작권법과 동등한 수준으로 법 시행 5년 이내에 개발해서 등록한 외국 특허에 대해 소급효(遡及效)를 인정키로 합의했다.

과학기술처는 이에 앞서 그해 4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대회의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와 SW개발연구조합이 공동 주최한 이 공청회에는 산업계·학계·연구계 대표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공청회장은 초만원이었다. 그만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은 컴퓨터 업계 최대 관심사였다.

이날 공청회에는 최영환 과학기술처 기술정책실장이 참석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제정 배경과 필요성,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어 토론자로 참석한 각계 인사들이 각자 의견을 밝혔다. 이용태 한국데이타통신 사장은 “국제 마찰을 줄이고 개발자가 표준SW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면서 “독점 위치에 있는 해외 SW업체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한다면 입법화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컴퓨터업계 대표들은 “이 법은 국내업체들이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시행해야 한다” “국내업체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원책과 병행해야 한다” “시행 시기를 조정하고 법안 내용을 우리 실정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 대표로 나온 박규태 연세대 교수와 김길조 중앙대 교수도 “법안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기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시스템공학센터 소장은 “보호법을 별도 법으로 제정하기보다 저작권법에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2009년 들어 현실화 됐다. 정부가 두 법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이날 공청회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공청회 중간에 해프닝도 벌어졌다. 최영환 실장이 보호법을 설명하고 있을 때 청중석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당신은 매국노야”라고 소리쳤다. 장내가 술렁였다. 그러나 최 실장은 표정 변화 없이 법안 내용을 설명하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소상히 답변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없었다. 공청회는 무사히 끝났다.

과학기술처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그해 11월 1일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11월 21일 오후 3시 경제과학위원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심의했다. 이날 상임위에는 과학기술처에서 이태섭 장관, 권원기 차관, 신만교 기획관리실장, 박승덕 연구개발조정실장, 최영환 기술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오한구 경제과학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성원이 되었기에 경제과학위원회를 개의하겠습니다. 과학기술처 장관, 나오셔서 법안에 대해 제안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태섭 장관이 연단으로 나가 제안 설명을 했다. “이 법안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고 개발한 프로그램의 유통 활용을 촉진해서 창작 활동을 강화하며, 경제·사회·산업 등 각 분야 산업의 발전과 SW 기술 향상을 위해 제정하려는 것입니다.”

의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외국 압력으로 이 법안을 제정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 상임위는 1시간여 계속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를 거쳐 12월 17일 오전 11시 열린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최영철 국회부의장이 의장석에서 사회를 봤다. “의사 일정 제12항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을 상정합니다. 경제과학위원회 간사인 이진 의원, 나오셔서 심사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진 의원이 연단으로 나가 심사보고를 했다. “이 법안은 1986년 11월 1일 정부가 제출해서 11월 3일 본 위원회로 넘어왔습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컴퓨터 등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장치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저작물로 인정해서 프로그램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프로그램 유통과 이용을 촉진해 SW산업 발전과 기술 수준 향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SW산업을 하루빨리 육성해서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외국과의 통상 마찰을 완화하기 위한 법안입니다.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하면 3년 이상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본 위원회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해서 심사 절차를 거쳐 일부를 수정 의결했습니다. 수정 내용은 프로그램 저작권에 대해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과학기술처에 설치토록 한 프로그램심의위원회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위원은 과학기술처 장관과 문화공보부 장관이 협의해서 위촉토록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배포한 심사보고서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영철 부의장은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안에 대해 경제과학위원회에서 수정한 부분과 기타 원안에 대해 이의 없으십니까?” (의원석에서 “이의 없습니다”라고 대답) “그러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는 이 법을 12월 24일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12월 31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법률 3920호)을 공포했다. 37조 부칙인 이 법은 이듬해인 1987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SW 개발자의 창작 의욕 고취와 공정한 거래를 유도, 국내 SW산업 발전을 촉진했다. 동시에 외국과의 통상 마찰을 막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1987년 12월 정부는 컴퓨터 프로그램 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1994년 10월 13일 프로그램심의 조정위원회로 명칭을 바꿨고, 2007년 4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위원회로 다시 개칭했다.

정부는 보호법을 PC 대중화와 인터넷 시대 개막에 따라 모두 4차에 걸쳐 전면 개정과 부분 개정을 했다. 2009년 4월 22일 정부는 법률 제9625호로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저작권법과 통합했다. 이에 따라 그해 7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위원회도 저작권위원회와 통합, 한국저작권위원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현 위원장은 최병구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은 국내 SW산업 발전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