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성공해법은 K-팝이 그랬듯, 이미 익숙한 글로벌 아이템을 한국적으로 융합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 “세계인의 K-컬처, K-아트 또한 새로운 융합으로 글로벌화 될 수 있다”.
30여 년 동안 문화정책 분야 일선에서 활약한 송수근 (사)한국국제문화포럼 회장이 K-아트의 세계화를 더한 K-컬처의 지속가능성 해법을 이렇게 제시했다. 최근 송수근 회장을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만났다.
송수근 한국국제문화포럼 회장은 현재 한류의 발전상을 함께 해온 문화정책 전문가다. 송 회장은 1987년 행정고시 합격과 함께 내무부, 경기도청, 공보처를 거쳐 1995년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정책 분야에 매진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거리응원 이벤트와 슬로건을 기획하면서 한류열풍의 에너지를 북돋웠으며, 2017년까지 뉴욕문화원장, 홍보지원국장, 콘텐츠정책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치며 문화관광부 제1차관에 오르기까지 국내외 한류열풍의 씨앗을 심어왔다.
공직생활을 마친 송 회장은 건국대·용인대 등의 초빙교수와 계원예술대 총장(2019~2021년)을 역임하며 문화계 전문 인재들을 발굴 육성하는 데 힘쓰는 동시에,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과 함께, 한국국제문화포럼 회장·한반도 미래발전협회·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회장 등 활약을 통해 K-아트 한류를 더한 문화적 미래먹거리 발굴 안착에 나서고 있다. 또한 '바위산' 테마의 화가로서도 활약 중이다.
송수근 회장은 인터뷰 내내 열정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시선으로 한류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며, 다양성을 포함하는 미술 한류 중심의 새로운 비전을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1987년 행정고시 합격과 함께 30년간 문화계 공직사회에 몸담았다. 문화 분야를 선택한 배경이 있는지?
▲내무부를 시작으로 경기도청에서 근무하던 와중에 공보처 방송 광고 분야의 일을 제안을 받으면서 문화계통을 처음 마주했다. 영문학 전공으로서의 인문학적 배경 덕분인지, 공직생활의 처음이 문화영역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궁합이 잘 맞음을 느꼈다. 그 덕분에 문화 분야 일을 나름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늘 문화 정책 일선에서 기획자로서의 시선을 견지했다.
▲문화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활동인 살림과 같다. 우리는 일상에 연결된 문화로 호흡한다. 문화 행정은 그러한 우리의 일상에 가치를 입히고 문화의 숨결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에 어우러지고, 맑게 정화해주는 문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문화 행정의 역할이다.
-국내외 문화계 전반과의 소통을 거듭하며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청와대 문화예술 분야 막내 행정관이었는데, 월드컵 TF를 위해 온 문체부 과장의 환영식을 계기로 수석님이 제게 담당 권한을 주시면서 정말 재미나게 일했다.
민간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슬로건에 부응, 대통령 결재를 받아 월드컵 구호인 'DYNAMIC KOREA'를 만들었는데 긍정적인 오해 덕에 국가 브랜드화로 자리 잡았던 것이 가장 뿌듯했다.
또 월드컵 분위기 조성을 위해 A매치 일정 첫 경기지역인 부산지역에서 붉은 티 응원을 시작, 대구, 광주, 대전, 수원, 인천, 서울 상암경기장까지 점점 올라오면서 하나의 응원문화로 자리 잡은 것도 잊지 못한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4강 진출 신화를 이룬 선수들을 위한 환영 행사에 있어서, 기존의 조촐한 행사계획을 뒤집어 서울시청 광장을 활용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렇게 많은 대중의 호흡이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멀티미디어, 소셜 등 글로벌 문화전문가로서 현재 한류의 발전상을 어떻다고 보는지?
▲한류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벅차다. 2007년 미국 뉴욕문화원장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한류는 음악, 드라마, 음식 등에서 조금씩 알려지는 미풍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는 경이로울 정도로 발전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는 물론 디자인, 푸드, 뷰티, 반도체, 의약품, 심지어 K-longevity(장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열풍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범위도 일본, 중국, 동남아를 넘어서 북미,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지로 그야말로 세계화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한류 영역과 지속가능성 모색이다. 한류 장르가 넓어졌다지만 개척할 분야는 여전히 많다. 중도에 꺾인 장르도 많다. 지속적인 인력양성 투입과 단계별 현지화를 통해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K-팝과 같은 사례를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갈 필요가 있다.
-계원예술대 총장으로 있을 때 화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 시작점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아직은 화가, 작가의 꿈을 키워가는 입문 4년 차의 풋내기다. 계원예술대 총장 시절 학교 내 구조조정 차원에서 평생교육원을 없앤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수강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소묘반, 유화반 과정을 수강하면서 만난 동료 학생들은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과정을 위해 이사를 온 분도 있고, 대학 입학을 시도하는 분들도 있었다. 단지 수익성 이유로 이들의 열정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안 되겠다 싶어서, 사업을 제안하고 평생교육원을 존속시켰다.
-작가 송수근의 작품지향점은 어떤가?
▲맨 처음 유화반 수강 당시 그리고 싶은 풍경이나 대상을 사진으로 보내라는 과제를 받고 세잔의 '사과' 사진을 제출한 적이 있다. 난감해하는 교수의 말에 아담과 하와, 뉴턴, 세잔 등의 사과가 종교와 과학, 현대미술을 바꿨고, 현재 4차산업혁명은 애플이 주도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렇게 저의 최초 그림은 세잔의 사과가 됐다. 이후에는 산, 호수, 정물 등 여러 그림을 그리다가 최근에는 바위산을 특화해서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바위나 산을 보면 그냥 건성으로 지나칠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멈춰 서서 자세히 관찰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바위산의 실루엣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바위산은 수천 개, 수만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바위산을 그리면서 나는 어느 순간 바위산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바위산은 의외로 수다스럽고 요구사항도 많다. 맘에 안 들면 잘 토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기분 좋을 때면 늘어지게 한숨 자고 가라고 자리를 펴주기도 한다. 그 많은 감정이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는다. 혼자 고고하게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다. 이런 걸 다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한국국제문화포럼 운영과 함께 미술 한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문체부 선배가 운영하던 '한중문화예술포럼'의 맥을 잇게 됐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단체의 이름을 바꾸고 기부금지정단체로 지정받으면서 활동폭을 넓혔다.
최근까지는 여러 미술 단체와 공동으로 제29회 한국미술국제대전 공모전, 제1회 서울한강비엔날레, 제30회 한국미술국제대전 페스타 특별기획전 등 미술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 지난해 말에는 미국 뉴욕에서 한국미술국제대전 뉴욕특별전을, 프랑스 파리에서 2023 파리 코리안엑스포를 개최했다.
문화원장 시절과는 또 달리 작가 관점에서 개최하는 경험이 신기했다. 이러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미술시장의 흐름과 작가들의 저작 활동, 그에 발맞춘 해외들의 상황까지 많은 것들을 느꼈다. 현재는 여러 기업의 도움과 함께 K-아트 세계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문화계 전반을 망라한 K-컬처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K-컬처 이름 때문인지 막연히 한국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순수한 한국적 요소는 찾기 어렵고 불가능하다. K-컬처의 성공해법은 이미 익숙한 글로벌 아이템을 한국적 정열과 손재주 등을 더해 비틀거나 융합하면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서양음악과 서양 군무로 연결된 K-팝은 물론, 명품 가방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 중인 시몬느, 글로벌 마스크팩 브랜드가 된 메디힐, 중국 만두보다 피가 얇고 식감이 좋은 한국 만두, 최근 주목받는 냉동 김밥 등 성공한 한류상품은 대부분 그렇다.
제가 생각하는 한류란 한류열풍 덕에 따른 수출증대 증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한국인의 재능, 열정, 감각, 손재주 등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서 직접 세계인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자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 최고 정유기술로 중동에 진출한 나라, 커피나무 한 그루 없지만, 로스팅 기술이 세계 최고인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인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한류가 세계인의 일상을 책임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회화작가로서의 행보 외에도 다방면의 예술적 호기심이 많은 듯 보인다. 이유가 있는지? 그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은?
▲다방면에 호기심을 지닌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직 때도 르네상스 형 인간이라고 찬사를 해준 사람도, 농담으로 별종직이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다.
다만 어느 하나에 감을 찾으면, 그에만 상당 기간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몰입대상과 관련된 글만을 찾아서 읽고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예술적 호기심이라면 '한때 좋아한 정도'겠지만, 그 호기심을 몰입과 꾸준함으로 지속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성장과 성과를 맞이한 것 같다.
-언론 인터뷰에서 미술 한류의 영역을 확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2024년 계획과 포부가 궁금하다.
▲올해의 역점은 K-아트의 세계화다. K-컬처의 많은 영역이 현재 세계인의 삶 속에 스며들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그런데 K-아트분야는 아직 그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한때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아트가 K-아트의 세계화를 이끌었듯, 새로운 융합 분야가 만들어진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 서울한강아트페스타라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올가을 서울숲 일원에서 펼쳐질 이 전시회는 융합예술 장르를 개발하기 위한 Pairing art 프로젝트와 함께, 장애인 아트 공모전, 신진작가 공모전 등 지속가능성 모색을 위한 노력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또한, 새로운 경향을 이루고 있는 메타버스 갤러리와 함께, 유력 컬렉터들이 소장한 세계 유명작품들을 만날 큐레이션 전시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뉴욕, 파리 등에서의 특별 순회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와 함께 현대미술 실기 특별강좌, 전문작가 인력 육성, 장애인 작가지원사업 등 기존 협회에서 추진했던 노력도 거듭할 예정이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