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헬기 훔쳐 우크라로 망명한 러 조종사, 스페인서 총 맞아 숨졌다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 조종사 출신 막심 쿠즈미노프. 사진=우크린폼 캡처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 조종사 출신 막심 쿠즈미노프. 사진=우크린폼 캡처

지난해 8월, 전투기 부품 수송 헬기를 몰고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 조종사가 스페인의 한 휴가지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1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GUR)을 인용해 지난 13일 러시아군 조종사 출신 막심 쿠즈미노프가 스페인 남부의 한 마을 아파트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현지 매체는 쿠즈미노프가 12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으며, 신원 미상의 무장괴한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인근에서는 총격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불에 탄 차량도 발견됐다.

당초 스페인 경찰은 쿠즈미노프가 현지 갱단의 표적이 돼 사망했다고 판단했으나, 그가 지난해 8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군 조종사라는 점을 확인하고 가능성을 열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즈미노프는 지난해 8월, 러시아 공군기지 두 곳을 오가는 수송헬기 'Mi-8'을 타고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군 조종사다. 당시 수송기 안에는 SU-27과 Su-30 등 전투기 부품이 실려 있었다.

그는 6개월 넘게 이어진 GUR의 설득으로 가족들을 미리 러시아 밖으로 빠져나오게 한 뒤, 수송헬기를 타고 망명했다. 당시 수송 헬기에 타고 있던 러시아인 2명은 망명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우크라이나 비행장에 착륙한 것을 알게 되자 쿠즈미노프를 공격하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사살됐다.

이에 우크라이나 측은 지난해 10월 러시아 정보 요원들이 쿠즈미노프를 '조국의 반역자'로 낙인찍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며, 강도가 아닌 사살이라고 봤다.

러시아에서 반정부 인사의 암살설이 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해온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옥중 사망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에도 공항에서 차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살아남은 바 있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이자 전직 KGB 요원인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폴로늄이 든 '방사능 차'로 독살당했다. 영국 정부는 리트비넨코 암살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러시아 정부는 쿠즈미노프 사망에 대해 무대응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 국방부와 가까운 일부 논평가들은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정보국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임명한 우크라이나 남부 관리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텔레그램에 “(이번 사건에) 너무 흥분하지 마라”며 “그들(우크라이나)은 깨끗한 슬레이트와 반역자의 이름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