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이 성장해서 보람된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짓는다. 사명(社名)도 기업이 지속성장을 위해 지향해야 할 미래 비전을 담는 그릇이다. 때에 따라서는 시대 변화에 맞추기 위한 개명(改名)이 이뤄지기도 한다. 통신사가 사명에서 '통신'을 지우는 대신 '텔레콤'을 사용한 2000년 전후반은 사명이 창업자·지역·사업 분야를 반영하다가 창의적이고 세계 지향적으로 변모한 때다.
초고속 인터넷 경쟁이 촉발되면서 자아를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와도 겹친다. 데이콤은 자사가 10년 넘게 앞선 '종합인터넷그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터넷 아니면 말도 꺼내지 말라!'라는 것이 당사 분위기였다. 하나로(텔레콤)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시내전화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모두가 의아해 했다. 하나로는 '고종 황제 이후 103년 만에 우리나라 전화선이 바뀐다'고 선언하면서 '인터넷과 전화를 동시에 쓰며 속도는 100배 빨라진다'는 설명으로 진입 의의를 피력했다. 경쟁사에 대한 KT의 대응은 사뭇 흥미롭다. 초기에는 '인터넷도 통신이다'라며 원조임을 강조했지만, 결국 '으뜸 인터넷 회사 한국통신'이라고 스탠스를 바꾸며 흐름에 편승했다. 우체국·전화국 전담 부처였던 체신부가 1994년 정보통신부로 개명하며 추구하던 초고속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말 융합시대에 대비한 종합통신사 삼강 구도가 형성된다. KTF에서 F를 떨구며 합병한 KT는, 평생 염원인 이동통신시장의 주도권 탈환을 다짐했다. SK텔레콤은 하나로를 가져와 유선의 도약판을 마련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골리앗과 경쟁하던 허밍버드 하나로는 '이제껏 못 봤던 세계를 보라(See the Unseen)'며 랜선을 공 삼아 노는 SK브로드밴드로 변신했다. LG유플러스는 '어제의 한계를 깨고 넘어서겠다'라며 사명에서 과감히 텔레콤을 떼어냈다. 이후 2016년 접속료 단일화를 끝으로 비대칭규제의 우산에서 벋어났다.
십여년이 지나 인공지능(AI)이 화두다. 5G는 AI의 미래상을 그리려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오픈AI가 개발한 챗GPT다. 챗GPT의 기능은 포털의 검색엔진으로, 오피스, 브라우저 확장프로그램으로, 키보드·스마트폰·전용기기, 앱스토어로 확산하면서 또 다른 IT 생태계를 형성, 우리 일상에 파고들 것이다. 과거 초고속·융합 시대와 마찬가지로 통신사는 AI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트워크가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변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찬의 근간인 네트워크를 소홀히 하면 모처럼 얻는 편익의 기쁨은 반감할 수도 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