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글로벌 기업 중심으로 미디어·콘텐츠 산업이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낡은 방송규제를 혁신하는 동시에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에 나선다.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이하 융발위)가 13일 발표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에는 유료방송 재허가 폐지라는 과감한 규제 개선 방안과 1조원대 펀드 조성, 세액공제 확대방안이 제시됐다.
◇낡은 방송규제 혁신…유료방송 재허가·재승인제 폐지
정부는 IP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위성, 홈쇼핑과 같은 유료방송사업자에 대해 재허가·재승인제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글로벌 기준으로 방송 제도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총선 이후 신속하게 유료방송 재허가·재승인제 폐지 안에 대한 후속 작업이 이뤄진다는 가정 하에 내년 하반기 방송법 제16조·제17조 개정으로 재허가·재승인제가 폐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업계는 환영하면서 확고한 실행력을 주문했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규제 개선은 환영하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실제 도입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며 “신속한 후속조치를 통해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허가·등록제를 등록·신고제로 완화한다. 쿠팡이나 알리익스프레스 등 신규 사업자의 방송진입이 가능해질 수 있다. 다만 공공성 확보 등을 고려한 사후 관리방안 마련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지상파와 보도채널 방송사업자의 행정부담을 줄이고, 안정적 경영을 도모하기 위해 재허가·재승인 유효기간 연장을 추진한다. 지상파, 종편·보도채널의 여론 형성 영향력과 공적 책임을 고려해 재허가·재승인제는 유지하되, 최대 유효기간을 5년에서 7년으로 확대한다.
◇한류 날개 'K콘텐츠' 민간투자 촉진으로 더 높이 난다
정부는 내년 6000억원 규모, 2024∼2028년 총 1조원 규모의 'K콘텐츠 전략펀드'를 새로 조성해 킬러 콘텐츠와 지식재산(IP)에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의 모태펀드(문화계정)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투자해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투자금을 마련하는 취지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통신사, 포털, 게임사 등의 투자를 유치할 방침이다.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한다. 영상콘텐츠 제작비용에 관한 기본공제율이 중소기업은 15%, 중견기업은 10%, 대기업은 5%로 상향된다. 일정 조건을 갖추면 대기업과 중견기업 10%포인트(p), 중소기업 15%p를 추가 공제한다.
이에 따라 최대 세액공제율이 중소기업 30%, 중견기업 20%, 대기업 15%로 높아진다. 만일 중소기업이 세액공제 30%를 받게 되면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했을 때 최대 30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영상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을 올리면 콘텐츠 제작비용부담 완화로 신규 콘텐츠 제작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현행보다 두 배 수준으로 올린 대기업 6%, 중견기업 14%, 중소기업 20% 세액공제율을 가정하면 2025년까지 경제적 순편익이 1449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이 9973억원, 취업유발효과가 1만3684명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세제 지원이 확대되면 실질적으로 혜택 금액이 늘어남과 동시에, 현재 세제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기업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낙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콘텐츠 창작 과정은 여러 분야의 관련 기업들이 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세제지원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 및 투자를 확대하면 중소기업들의 기회 또한 늘어나고 매출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민관 협력 의미 커…후속조치 만전 기해야”
이번 정책안은 미디어·콘텐츠 업계, 학계 등 민간전문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함께 만든 종합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만, 각 부처에 산재해 있는 개별 미디어·콘텐츠산업 정책을 모은 만큼 관계부처가 후속조치에 만전을 다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유료방송 재허가·재승인제 폐지에 과기정통부, 방통위 등 관련 부처의 의지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과기정통부, 문체부, 방통위 등으로 미디어·콘텐츠 정책과 규제 역할이 나뉜 지금의 복잡한 거버넌스가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이는 융발위의 제한적 역할 탓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융발위는 해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해진다. 규제와 중복 지원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융발위가 단순히 국무총리 자문만 담당하면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 핵심은 방송법 개정”이라면서 “해당 법 개정은 이번 총선 결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안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위해 각 부처 국장 이상 급이 참여하는 위원회의 상시기구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