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보험사 '자체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제도(ORSA)' 개편에 나선다. 해외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한 중소형사는 평가가 면제될 예정이지만, 사실상 규제 강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ORSA는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리스크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감독당국이 관리하는 건전성 제도(K-ICS)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마련됐으며, 금리나 유동성 같은 계량 리스크 외에 법률이나 회사의 평판 등 비계량 리스크까지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12월부터 보험연구원, 보험개발원 등 보험업계와 함께 ORSA 개편을 위한 TF(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TF에선 EU나 미국처럼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형사에 한해 ORSA 예외를 인정해 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규모가 작은 보험사의 경우 시스템 구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등에 대한 부담이 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도입 유예보단 일부 보험사에 ORSA를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선하려 하고 있다”며 “이 경우 핵심은 예외 대상에 대한 기준으로, 기준은 보험업계 의견을 청취해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금감원의 개선방안이 표면적으로 예외 대상 설정이지만, 사실상 ORSA 확대를 위한 포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 유예를 통해 ORSA 도입을 미뤄온 보험사들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자체 위험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난 2017년 ORSA 도입 이후 금감원은 국내 모든 보험사가 자체위험 평가를 실시하도록 지도해 왔다.
다만 보험사별로 ORSA를 유예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열어둔 것이 화근이 됐다. 보험사의 편의를 봐준 조치였지만 대다수의 보험사가 ORSA를 유예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ORSA 참여율이 저조하자 지난 2018년엔 금감원이 직접 공문을 통해 유예 보험사들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현재까지 ORSA를 도입한 국내 보험사는 전체의 약 3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ORSA 시스템 전문가는 “기존에 유예를 인정해 주다 보니 ORSA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며 “기준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작은 보험사를 제외하고는 자체 위험평가를 실시해야 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EU는 수입보험료 500만 유로, 책임준비금 2500만유로 미만의 소형 보험사에게 ORSA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 EU 기준을 국내 생명보험사에 적용할 경우 모든 회사가 ORSA 대상이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