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가 넘치고 국민의 생활이 핀다. 통신사는 자신의 성장을 가입자 수를 내세워 자랑하기도 한다. 데이콤의 PC통신 천리안은 '국내 최초, 10만 가입자' 달성을 알렸다. 20만 이벤트 시행 후 50만에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사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장세였다. 디지털 전환 후 100만 가입자 돌파 기념으로 시작한 SK텔레콤 광고는 500만에서 피크를 이룬 후 700만의 공동구매·광고플랫폼으로 마무리 짓는다. 옛 한국통신프리텔은 첫 진입 후 1998년 증가율 1위라며 성장 잠재력을 선전했다.
성장은 진통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람이 신체적인 성장과 교육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일인의 몫을 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탄성을 받아 성장하는 임계점에 도달하려고 한다. 가입자 수가 늘수록 사용량과 수익이 배가되는 네트워크 효과와 고정비가 많아 평균단가가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선순환하기 때문이다.
시장 초기 통신은 가입자 수는 적고 단말기 단가는 높아 부를 현시하는 지위재가 되기도 한다. 서울·인천 간 전화선이 가설된 1902년 신청 건수가 4건이었다. 서로 한 통화씩 하면 12번이니 통화당 원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196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집 전화는 보란 듯이 현관 앞에 놓여있었다. 옆집에서 전화 왔다며 필자 집에 알려주러 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자동차 뒷날개에 치렁거리는 차량 전화의 긴 안테나는 교통경찰이 거수경례해주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가짜 안테나를 달기도 했다. 보급기 스마트폰이 사치를 조장한다는 중학생의 신문 기고문은 귀엽기까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 비범함은 평범함으로 변모한다. 이동통신은 사물인터넷(IoT)으로 영역을 확장해 7600만 수준으로 인구수를 훨씬 앞섰다. 1999년 전후반 30만에도 미치지 못했던 초고속 인터넷 가구 수는 세계 유례없이 2003년 천만 수준으로 수직상승 했다. 치열한 경쟁 덕이었다.
어떤 서비스도 변곡점을 지나면서 성장은 더뎌진다. 일생을 보면 S자를 옆으로 길게 늘인 로지스틱 패턴을 보인다. 수(壽)를 누리느냐는 더 센 서비스의 등장에 좌우된다. 집 전화는 1987년 1000만 가구에 보급되기까지 80여년이 걸렸고 십여년 만에 두 배로 성장했지만, 이동통신이 보급되면서 1000만 수준으로 회귀 중이다. 삐삐는 흔치 않게 삼각형의 패턴을 보이며 1500만 규모로 성장했지만, 휴대폰 때문에 사라지는 흥망성쇠를 겪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에서 배우 성동일이 주식을 몽땅 날린 빛도 보지 못하고 사그라든 시티폰(CT-2)을 떠올리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IPTV의 등장으로 케이블TV 가입자가 감소한다더니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때문에 코드 커팅이 진행 중이란다.
통신 시장은 혁신의 신기(新器)가 쉴새 없이 등장한다. 하얀 양복의 이정재가 무슨 일 있으면 '삐삐, 쳐!'라고 무게 잡는 광고는 지금은 촌스럽기까지 하지만, 옛날에는 멋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헌것이 되고 새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섭리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