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공을 던져 보라. 한 개의 공을 던지면 쉽게 잡는다. 한꺼번에 두 개 이상의 공을 던지면 어떨까. 한 개의 공도 잡기 힘들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상품을 기획, 설계하고 제조, 판매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부서, 위원회 등 많은 조직이 관여하고 프로세스가 복잡하면 다양한 상품이 나올 순 있어도 인기 있는 상품이 나오긴 어렵다. 상품의 본질과 핵심은 복잡함 속에 갇혀 드러나지 못한다. 스콜라 철학자 윌리엄 오컴은 가정과 전제를 제거하고 본질과 핵심만 남기면 진리와 정답일 가능성이 크다('오컴의 면도날')고 했다.
탐험가 콜럼부스의 달걀을 보자. 달걀을 세로로 세우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그렇게 하려면 특단의 수를 써야 한다. 달걀의 아랫부분을 깨트려 세우는 것이다. 단순하지 않는가. 알렉산더의 매듭을 보자. 복잡하게 얽혀있는 매듭을 푸는 방법은 무엇인가. 많은 시간을 들여 일일이 매듭을 풀 수 있지만 단칼에 잘라버리면 바로 풀린다. 단순함의 힘이다. 유료방송 채널을 보자. 수많은 방송프로그램 채널이 있어 다양한 것 같지만 복잡하기만 하다. 좋은 콘텐츠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복잡하게 얽어 놓고 선택권을 주는 것은 선택권을 주지 않은 것과 같다.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만 읽을 요량인지 현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많다. 접속사, 조사, 부사 등 쓸데없는 단어를 끊임없이 지워나가자. 그렇게 줄여 의미가 전달되면 좋은 글이다.
애플 아이폰도 마찬가지다. 제품안내서가 필요 없다. 버튼도 거의 없다. 사용하다보면 쉽게 즐기게 된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자. 단순하다. 설명서 없이 사용법을 몰라도 이용할 수 있다. 당시 거대 기업이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기획, 설계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아이디어를 모은다며 쓸데없이 많은 임직원이 관여한다. 결재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덧붙인다. 기능만 많고 고객이 찾지 않는 서비스가 나올 것이 명백하다.
음식도 그렇다. 양념을 덕지덕지 바른 생선은 맛있다. 생선 본연의 맛보단 양념의 맛이다. 음식의 궁극적인 맛은 '지미무미(至味無味)'라고 한다. 양념 속에 숨지 않은 신선한 식재료에서 나오는 담백한 맛이다. 그렇다. 좋은 식재료가 없던 시절에 양념을 발전시켜 끼니를 때웠으니 재료 본연의 맛이 어색할 수 있다. 단순한 맛의 본질과 핵심에 매료되면 과한 양념의 음식을 먹기 어렵다.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많은 색깔의 물감을 쓰지 않는다. 균형 잡힌 한 두 색으로 큰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단순하지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정화시킨다.
이동통신업체에 대한 고객 불만 중 하나가 요금제다. 너무 많고 복잡하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한 요금제를 가지고 있는 업체가 있다면 바로 옮길 것이다. 요금제가 복잡한 이유가 뭘까. 규제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선거철이면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으라고 법적 근거 없이 강요한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요금제를 내놓지만 그렇게 해선 손해를 볼 것이니 수많은 요금제 속에 가둬둔다. 그렇게 해두고 대리점, 판매점의 현란한 말솜씨로 고객을 끌어들인다. 정부와 정치권의 관여를 끊어야 한다. 단순한 요금제로 고객만 보고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순함은 복잡함이 가진 가리개를 양파처럼 까서 본질과 핵심을 드러낸다. 그것이 시장과 고객을 위한 길이다.
단순함의 단점은 뭘까. 무미건조함이다. 쉽게 질릴 수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름다움이고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고객의 가슴 뛰는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필자가 겪은 휴대폰업체는 고객이 포장 상자를 뜯고 그 안의 매끈한 스마트폰을 접하게 되는 '언박싱(unboxing)' 시간을 약 7초에 맞췄다고 한다. 고객의 기대감과 감동을 극대화했다. 단순함은 고객이 쉽게 지갑을 열게 할 뿐 아니라 기꺼이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