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연합학습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닻을 올렸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약동학 예측 모델' 개발을 목표로 5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국내 대표 제약사 대부분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초기 사업 열기도 뜨겁다.
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K-멜로디) 프로젝트 사업단은 지난 1일부터 업무에 착수했다. 과제 기획을 시작으로 공모 절차 등을 마련하고, 내달부터 본격적인 참여기관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 사업은 국내 최초로 연합학습 기술을 활용, AI 신약개발 모델을 만드는 국가 연구개발(R&D)사업이다. 연합학습은 데이터 이동 없이 AI 엔진만 보내 학습시킨 뒤 결과물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2019~2021년에 아스트라제네카, 머크, 바이엘 등 글로벌 빅파마 10곳과 주요 대학, IT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연합학습 기반 '멜로디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해 'K-멜로디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이 사업은 2028년까지 5년간 348억원을 투입한다. 지난달 김화종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장이 사업단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사업단은 여러 AI 신약개발 모델 중 '약동학 예측 모델' 개발을 최종 목표로 선정했다. 약동학은 약이 인체 내 흡수, 분포, 대사, 배설되는 것을 총칭한다. 후보물질이 체내에 문제를 일으키는 타깃까지 잘 도달하는지 예측하는 AI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김화종 사업단장은 “아무리 좋은 후보물질을 발굴하더라도 약이 체내에 제대로 흡수되지 않으면 신약으로 가치가 없다”면서 “국내 AI신약개발 솔루션이 후보물질 발굴에 집중돼 있는데 약동학 예측 솔루션을 함께 활용하면 추후 신약 개발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 '멜로디 프로젝트'에서도 약동학 예측 솔루션을 개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실험실 혹은 전임상 단계 데이터를 활용한 반면 'K-멜로디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데이터까지 활용할 계획이다. 예측 범위와 정확도를 대폭 높일 수 있다.
사업단은 이번 사업을 제약사, 병원, 연구소 등 20개 기업·기관과 함께 수행할 계획이다. 국내 제약사가 참여하는 AI 신약개발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AI 신약개발 역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제약사들은 사업 참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유한양행, 종근당, 녹십자,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 국내 상위 10개 제약사를 포함해 중견 제약사까지 대부분 참여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12~13개 제약사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2026년 AI 기반 약동학 예측 솔루션 개발을 완료하고, 2027년부터 사업에 참여한 제약사에 우선 적용한다. 이후 임상 데이터 학습 범위를 확대해 솔루션 고도화도 추진한다. 적응증, 환자별로 약동학 차이를 예측하는 게 핵심이다.
장기적으로 사업화도 검토한다. 세계 최고 수준 데이터를 학습한 AI 솔루션으로 글로벌 시장에 출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김 단장은 “이번 사업은 그동안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야만 가능했던 AI 프로젝트 틀을 깨는 동시에 그동안 도구에만 머물렀던 AI가 신약 개발 핵심 무기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며 “우리나라 신약 개발은 물론 국내 제약사 데이터 역량까지 높여주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