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부가 AMSL 본사 이전 검토에 놀라 '베토벤 작전'을 내놨다. 총 25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해 물류·교육·교통·전력망·인력 양성 등 AMSL에 필요한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집안이 네덜란드 출신인데, 독일인으로만 아는 일을 다시 만들지 않겠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첨단 반도체용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ASML은 네덜란드 경제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 ASML이 인프라 한계로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해외 이전 가능성을 시사했으니 네덜란드 정부가 깜짝 놀랐을 것이다. 기업은 운영 및 투자하기 좋은 곳을 찾아 움직인다는 말을 새삼 실감케 한다.
AMSL 사례에 더해 미국의 반도체 투자 유치를 보면 우리의 기업 환경을 뒤돌아보게 한다. WSJ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파운드리 팹을 짓는 미국 테일러시에 추가 라인을 세우고 패키징 공장도 신설한다고 전했다. 총 투자금액은 440억달러,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육박한다. 삼성이 실제 투자에 나선다면 이는 현지 고객 접근성이 유리하고 강력한 보조금이 핵심 동인일 것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삼성의 미국 팹 건설 비용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비용 부담에도 삼성이 미국 투자를 이어가는 건 분명 실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생산거점을 두는 것보다 미국에 팹을 짓는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터다.
미국 뿐만이 아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역시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려고 막대한 보조금과 지원정책을 쏟아낸다. 반도체 팹 보조금도 없이, 세액 공제만 내세운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이마저도 올해 일몰을 맞이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해외에 눈을 돌리는 우리 기업을 잡으려면 '한국판 베토벤 작전'이 시급하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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