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내내 저작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만큼이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 K콘텐츠의 해외 불법유통 문제를 논할 때는 착잡함과 아쉬움이 드러났다. 하지만 앞으로의 방향성과 목표를 밝힐 때는 단호함과 결의가 느껴졌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K저작권이 K콘텐츠 산업 밑바탕이라고 정의했다. K콘텐츠에 대한 높아진 기대감에 우리 정보통신기술(ICT) 강점을 잘 융합한다면 글로벌 저작권 산업 혁신을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유 장관은 “지난 2008년 장관이 돼(첫번째 임기)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저작권”이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정한 '저작권 감시 대상국'이었다. 그는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는 마음에 저작권감시대상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성과를 냈다. 또 법 개정 노력을 시작, 2000년대 후반 저작권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지금의 K콘텐츠 확산에 대응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유 장관은 요즘에도 저작권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그는 “저작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선제적인 저작권 규범을 마련해 저작권 강국으로 입지를 굳혀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을 만나 국내 저작권 정책이 나아가야할 길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주요 현안은 무엇인가.
▲지난해 193억 달러의 저작권 수출을 달성했다. 특히 문화예술저작권 분야는 3년 만에 7배나 뛴 11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모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게임, 음악, 영상, 웹툰 등 다양한 K콘텐츠의 약진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진적 저작권 보호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다. 반면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등장은 관련 업계에 새로운 위기감과 도전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창작자 보호 없이는 K콘텐츠의 미래도 없다는 신념으로 창작자 권익보호 기반이 되는 저작권 현안을 풀어낼 계획이다.
-올해 저작권 보호 인식전환 프로젝트의 역점 사항은.
▲콘텐츠 불법유통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속 등 사후적 대응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콘텐츠를 제값내고 이용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올해는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내돈 내산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관련예산도 지난해 3억5000만원에서 올해 17억원으로 늘렸다. 우선 광고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국민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광고 핵심 메시지 개발과 호소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공익광고, 숏폼 영상, 캠페인 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 합법 이용을 독려할 것이다. 또한 MZ세대(이용자) 및 창작자, 콘텐츠 기업 등이 저작권 보호 서포터즈로 참여, '내돈 내산 프로젝트' 메시지를 적재적소에서 전파토록 지원하겠다.
언론, 방송사, 온라인 플랫폼 및 정부 매체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국내·외 저작권 존중 메시지를 적극 확산하겠다. 특히 해외 이용자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인터폴·재외공관·세종학당 등과 협력채널을 본격 가동할 것이다.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을 위한 국제공조 강화 방안은.
▲한류열풍과 함께 K콘텐츠에 대한 해외 불법유통도 확대일로다. 최근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그 침해 수법도 지능화되고 있다. 추적과 단속이 더욱 어렵다. 온라인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순식간에 확산되는 저작권 범죄는 우리 정부 단독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해외 수사·사법기관들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체부는 2021년부터 196개 회원국을 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협력망을 활용해 각국 수사기관과 긴밀하게 공조해 왔다. 최근 굵직한 성과도 거뒀다. 지난해 10월말 인터폴과 공조로 인도네시아에서 수년간 IPTV를 통해 K콘텐츠를 불법 송출한 일당을 검거했다. 연말에는 미국과의 공조로 국내 최대 웹소설 불법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했다.
올해는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국제공조를 위해 인터폴과 협력프로젝트를 확대한다. 미국, 인도네시아 등 주요 협력국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국제수사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다른 국가와의 저작권 분야 교류 협력 방안은.
▲저작권 분야 국제 교류·협력은 크게 2가지 방향성을 갖고 추진 중이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저작권 선진국과는 생성형 AI 등 저작권 이슈에 대한 정책 방향을 공유한다. 상호 협력을 통해 글로벌 규범 논의를 선도하고자 한다. 저작권 분야 규범설립자(rule-setter)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다지고자 한다.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과는 한국의 저작권 정책 경험을 공유한다. 궁극적으로 해당국의 저작권 법제도와 집행 체계 개선을 유도한다. 저작권 침해 관련 국제공조를 강화하고자 한다.
현재 아시아 5개국(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베트남)과 10년 이상 정례적인 교류협력을 해오고 있다. 불법유통 억제와 합법시장 확대로 이어지도록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화할 계획이다.
올해는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저작권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제대로 보호받고 제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작년 12월 발표한 '저작권 강국 실현 4대 전략'에서 음악저작권 해외 징수체계 개선에 대해 언급했다. 국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들의 해외 저작권료 징수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 계획이 있나.
▲해외 저작권료 징수 면에서 가장 활성화돼 있는 음악분야 신탁단체들 사례를 들겠다. 우선 이들 단체가 해외 유관 저작권 단체들과의 상호관리계약 체결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단체가 없거나 단체 설립 초기 단계인 국가에 대해서는 민관 공동으로 법·제도 전수,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자문과 지원을 제공한다. 음악 사용량 대비 징수액이 미미한 국가를 대상으로 원인 분석을 위한 실태조사도 연내 추진한다.
또 징수액 확대와 투명한 정산자료 확보를 위해 정부 간 회의에서 징수·정산 체계 개선 방안을 본격 논의한다. 한국음악의 해외 진출에 따른 음악창작자 권익을 향상시켜 나갈 것이다.
아직은 국제적 환경에서의 활발한 움직임이 덜한 타 분야 단체 등도 장기적으로 해당 분야 특성에 걸맞는 해외 사용료 징수 체계와 역량을 갖춰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살펴보겠다.
-유튜브에서 유행 중인 AI '밤양갱' 들어보셨는지.
▲AI가 '밤양갱'을 커버한 노래를 들어보니, 누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AI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이같은 기술 발전은 놀랍지만, 유명인의 음성·초상을 무단으로 사용해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한다면 그에 따른 문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공지능 생성물이 각종 범죄에 악용될 우려도 커진다. 해외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 마련에 고심 중이다.
우리도 AI 산출물임을 표시하는 제도 도입 여부 및 그 범위에 대해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필요시, 퍼블리시티권이라고 불리는 음성·초상 등에 관한 권리에 대해 저작권 측면에서의 대응책 마련도 적극 검토하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 2월 관계부처와 법조계 추천을 받아 2024 AI-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구성해 발족했다.
작년 워킹그룹이 현행 저작권법을 기준으로 '생성형 AI' 활용 시 유의할 사항에 대해 안내했다면, 올해 워킹그룹에서는 그간 도출된 심화쟁점에 대해 검토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워킹그룹도 '학습'과 '산출' 두 개 분과로 나눠 운영하는 등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AI 학습용 저작물의 적법한 이용권한 확보방안, AI 학습데이터 목록 공개, AI 산출물 표시제에 대해 논의해 나가고 있다. 공개 포럼을 통한 의견수렴을 거쳐 AI-저작권의 정책 방향 및 법·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제도 도입은 신중해야 하지만, AI 저작권 제도개선은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워킹그룹을 통해 AI-저작권 정책방향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사항을 발굴하겠다.
-산업계에서는 과도한 규제 입법은 AI 기술개발에 독이 될 것이라고 본다. AI 저작권에 대한 원칙이 있는가.
▲산업계에서는 관련 기술 개발에 있어 대량의 양질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 저작권 보호를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창작자측에서는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도 있는 AI 발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호소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양측 모두 다 수긍이 가는 일리있는 주장이다. 창작자의 권익 보호와 우리나라 AI 산업 발전이라는 두가지 정책 가치가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양측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규범과 정책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AI 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도 이러한 원칙하에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도출되도록 운영하겠다. 국내외 AI 개발사, 벤처기업, 법조계, 학계, 권리자 단체 등 다양한 이해를 반영한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의견수렴과 조율 과정 등을 거치도록 하겠다.
-AI 저작권 이슈 해결와 함께 기초 예술저작권에 대한 발굴과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
▲K콘텐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적 기여의 원천인 기초 예술 분야의 성장,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문체부는 기초 예술분야의 장르별 창작활동 지원과 함께, 이들의 저작 권리자로서의 인식과 역량을 키워주고자 노력 중이다.
특히 매절계약 강요 등 관행과 저작권에 대한 낮은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창작자 대상 불공정한 계약 체결 방지, 권리행사 지원을 위해 저작권법률지원센터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신진·예비예술인 참여 공모전 실태조사, 현장형 저작권 교육 확대 등을 통해 인식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창작자 권리 보호가 미흡한 장르인 건축·안무 분야 저작권 보호 체계를 점검하고 맞춤형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임기 중 저작권 분야에서 꼭 이루고 싶은 걸 하나 꼽아달라.
▲지난 임기 내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연장하고, 저작권 특사경 출범, 불법 상습업로더 계정정지명령 도입 등의 노력으로 지재권 감시대상국에서 최초로 해제되었을 때 기쁨이 생생하다.
당시 문화시장 개방 등에 소극적인 분위기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했다. 결국 그때의 노력이 지금의 K컬처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은 AI 등 신기술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새로운 환경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콘텐츠 산업발전의 최우선 전제조건은 창작자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K콘텐츠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세계 콘텐츠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저작권 보상체계 선진화를 적극 추진하고자 한다.
AI와 저작권, 영상 등 장르별 저작권 이슈에 대해 해외 동향 등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창작자와 업계의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 단계적으로 제도화해 나갈 것이다. AI 시대에 관련 산업발전을 도모하면서 인간의 창작활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저작권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최선에 노력을 다하겠다.
◇유인촌 장관은.
1951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앙대에서 연극영화학과 학사·연극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연극 '오셀로'로 데뷔했고,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둘째 아들 용식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돼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3년간 재직했다. 퇴임 이후 대통령 문화특별보좌관,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연극 무대로 돌아와 배우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