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소재인 '초순수'(고순도 공업용수)는 일본이 전 세계시장을 사실상 독점한다. 일본 정부는 2019년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국내 반도체 제조사는 외산 특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초순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민관 원팀을 구성해 한국 경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초순수 기술 자립화에 나섰다. 환경부 기자단과 '초순수 실증플랜트' 시운전 현장을 직접 찾아 국산화 연구개발(R&D) 사업 추진현황을 둘러봤다.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구미행 버스에 탑승해 두 시간 남짓 내달려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인 '구미국가산업단지'에 도착했다. 환경부는 SK실트론 본사가 있는 구미산단에서 초순수 생산 국산화 R&D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21년 11월 SK실트론 2공장 내 초순수 실증플랜트를 착공했고, 내년 12월까지 약 5년간 예산 325억원(민간포함 시 443억원)을 투입해 초순수 설계·운영 기술은 100%, 시공 기술·핵심 기자재는 70% 국산화한다.
'초순수'는 반도체 표면에서 각종 부산물, 오염물 세척 등 반도체 제작 공정 전반에 사용된다. 불순물이 거의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최고난도 수처리 기술이다. 150㎜ 웨이퍼 1장 세척에 통상 초순수 0.8~1톤이 투입된다. 민관 컨소시엄은 세계 3위(12인치 기준) 반도체 웨이퍼 제조기업인 SK실트론 부지에 국산 실증플랜트를 구축, 국산 초순수 공급을 처음 시도한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초순수 실증플랜트 운영을 총괄하고, 플랜트 설계·시공은 한성크린텍, 배관 설계·시공은 진성이엔씨가 각각 맡았다. SK에코플랜트는 사이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SK실트론은 직접 사용·검증과 시산표(T/B)를 제공한다.
SK실트론 내 실증플랜트는 하루 2400톤 초순수 생산을 목표로 외산장비를 활용하는 1단계와 국산장비를 사용하는 2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 시설은 수질검증을 거쳐 작년 5월부터 SK실트론에 1200톤 규모 초순수를 공급, 웨이퍼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2단계 시설은 작년 12월 구축을 마쳤고, 최근 시운전을 끝내 1200톤을 추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올 하반기 자외선산화, 탈기막, 이온교환수지 등 국산화 설비 3종에 대한 연속 가동 성능평가를 진행한다. 수질분석 완료 후 SK실트론과 실공급 일정 협의를 거쳐 하반기 내 국산장비로 초순수를 생산해 웨이퍼 양산에 사용할 예정이다.
초순수 설계·운영 기술 100% 국산화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일본과 경쟁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효중 한성크린텍 이사는 “그동안 쿠리타, 노무라 등 일본기업이 초순수 플랜트 설계시장을 독점하면서 일본 소재·부품·장비(에 유리한 스펙)를 적용해 초순수 생태계 자체가 특정 국가에 의존됐다”면서 “(SK실트론 초순수 실증플랜트를 계기로) 확실히 설계·시공 검증이 됐고 역량이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향후 일본 기업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