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차세대 제품에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 탑재를 공식화했다. AI 반도체 칩 출시 주기도 기존 2년에서 1년 단위로 앞당기면서 HBM 개발 속도 경쟁에 불을 붙일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서 내년에 선보일 차세대 AI 반도체 칩(플랫폼) '루빈(Rubin)' 세부 사양을 일부 공개했다. 루빈은 올해 선보인 '블랙웰'의 차기 버전이다.
구체적으로 루빈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HBM4를 적용해 AI 반도체 칩을 구현할 예정이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반도체 칩의 HBM4 탑재 여부를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이 개발 완료한 HBM은 5세대인 'HBM3E'다. HBM4는 메모리 기업이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제품으로, 내년 개발이 완료될 전망이다.
기본 제품인 루빈에는 HBM4가 8개 탑재되지만 고성능 버전인 루빈 울트라에는 HBM4가 12개 적용된다. 엔비디아가 자사 AI 반도체 칩에 HBM을 12개 쓰는 것도 최초다. HBM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HBM4의 단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칩 출시 주기를 앞당긴 것도 주목된다. 엔비디아는 2020년 암페어 구조의 A100 등 A시리즈를, 2022년 호퍼 구조의 H100 등 H시리즈, 그리고 올해 블랙웰을 선보였다. 내년에 로빈을 출시한다는 것은 기존 2년 단위 출시 기간을 1년으로 단축했다. 블랙웰이 지난 3월 공개, 올 하반기 양산 예정인 것으로 고려하면 루빈 역시 내년 말 제품을 공급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주기는 최근 HBM 개발 주기와도 맥을 같이한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 중인 SK하이닉스는 최근 HBM4를 2025년에 개발 완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 로드맵에서 1년 정도 앞당긴 것이다.
김귀욱 SK하이닉스 HBM 첨단 기술팀장은 지난달 열린 '국제메모리워크숍(IMW 2024)'에서 “HBM 1세대가 개발된 후 2년 단위로 세대를 거듭해 발전했지만, HBM3E부터는 1년 단위로 세대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올해 HBM3E를, 내년에 HBM4를 개발하고 2026년 7세대인 HBM4E를 개발한다는 의미로,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 요청으로 개발 일정이 앞당겨진 것으로 풀이된다.
AI 반도체 칩 시장 주도권을 쥔 엔비디아가 개발 주기를 앞당긴 만큼 향후 차세대 HBM 개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HBM 시장 대표 제조사인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모두 HBM4E까지 비슷한 개발 로드맵을 설정해놓은 상태인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향후 시장 선점을 좌우할 승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엔비디아는 또 내년에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인 '베라(Vera)'도 출시할 예정이다. 엔비디아가 자체 CPU를 내놓는 건 그레이스 이후 3년 만이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
권동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