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발암성 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로 오염된 수돗물을 사용한 주민들의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현지 정부가 전국 단위 현황 조사에 착수했다.
26일 산케이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달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의 지자체 담당 부서와 수도 사업자 등에 수돗물 오염 실태 파악을 요청하는 문서를 발송했다. 오는 9월까지 수돗물 등에서 검출된 PFAS 농도와 정수정 정보를 요청하는 문서다.
일본은 이전에도 PFAS와 관련한 조항을 수도 조사에 포함했지만, 이번처럼 전국 단위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PFAS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기불소 화합물을 일컫는다. 발수(撥水), 발유(撥油) 성질이 있어 프라이팬 코팅이나 반도체 제조 등에 사용된다. 최근에서야 유해성이 밝혀진 이 물질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데다, 생물의 몸에 축적되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미국 환경보호국은 올해 4월 PFAS의 대표 물질인 PFOS(퍼플루오로옥탄산)와 POFA(퍼플루오로알킬 및 폴리플루오로알킬 물질)의 엄격한 기준을 세워 각국에 대책 강화를 강구하도록 했지만 일본에서는 관련 대응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일본 각지에서 불거지는 수돗물 오염 피해 사례로 일본 내 수돗물 조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지난해 10월 밝혀진 오카야마현의 요시비 주오마치 마을이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약 1000여 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마을의 수돗물에서는 일본의 잠정 목표치인 1리터당 50나노그램(ng)의 28배에 달하는 1400ng의 PFAS가 검출됐다.
문제가 확인되면서 이 마을에는 수돗물 사용을 제한하고, 근처 급수소에서 물을 가져다 사용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지만 이미 마을 상당수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미국 학술기관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지적한 혈액 중 PFAS 농도는 20ng/㎖이다. NHK가 조사한 결과 혈액 검사를 받은 27명의 마을 주민 모두가 이 수치를 웃돌았다.
한 60대 여성은 혈중 PFAS가 362.9ng/㎖로 매우 높게 기록됐다. 이 여성은 4년 전 이상지질혈증을 진단받고 계속해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지질혈증은 PFAS와 관련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질병 중 하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산 문제다. 이 마을의 30~40대 여성 5명 중 3명이 유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13년 전 도쿄에서 이 마을로 이사 온 여성 A씨는 이 마을에서 세 차례나 유산했다.
NHK는 “이 마을과 PFAS의 혈중 농도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나,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관련이 있다고 결론내린 논문이 수 차례 발표됐다”고 부연했다.
또한 일본 국가식품안전위원회도 “2021년 3월까지 공표된 23개 문헌을 분석한 결과 (혈중 PFAS 농도와) 유산 위험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고 NHK는 전했다.
고이즈미 아키오 교토대학교 명예 교수는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PFAS 규제가 가능 늦은 국가”라며 “수원이 마르게 되면 농도 역시 높아지게 되므로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 차례 조사하고, 수치에 따라 주민들의 건강 조사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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