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전화 요금을, 한 통화 3분당 25원으로 하는 시분제를 도입한 것은 1990년 1월이다. 이전에는 전화 한 번 걸면 같은 요금으로 몇 시간이고 통화할 수 있었다. 일부 통화자가 전체 통화 시간 중 엄청난 비중을 점유하는 '20/80 룰'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일었다. KT는 '내가 사용하는 전화선 다른 사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분제 도입을 알렸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집 전화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라고 명시되어 있다. 요금은 기본료·통화료로 구성된다. 통화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기본료는 원칙대로라면 가구 전용으로 부설된 전화선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야 하지만, 그러자니 가구 지출에 너무 부담되고, 통화료는 국민이 이용하는데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낮게 설정되었다. 시내전화 부문은 늘 만성적자에 시달려 프리미엄 서비스인 국제·시외전화 부문의 흑자로 보전되었다. 문제는 프리미엄 이용자가 원가보다 훨 높은 요금을 지불 해야 하기에 '부담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방 압박으로 국제·시외전화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이 같은 '내부보조' 관행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국제·시외전화 요금은 인하하고 시분제로 시내전화 요금은 인상하는 '요금 재조정'은 주요 정책 과제였다.
쉽지는 않았다. 요금을 낮추는 건 누구나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에 정치인이고 공무원이고 요금인하는 앞장서서 떠들어대지만, 인상해야 할 때는 하나같이 함구(緘口)한다. 198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엄청난 인플레와 실업이 병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기에 가구에 부담되는 시분제 도입은 민감한 이슈일 수밖에 없었다. 1998년 옛 통신개발연구원(KISDI)가 개최한 공청회에서는 이점을 적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발언이 눈에 띈다. 국민이 집 전화사용에 익숙해져 요금인상에도 사용량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인상분은 고스란히 KT의 수익이 되리라는 지적이다. 규모는 500억 원정도로 투자비로 환산하면 1조원가량으로 추정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다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연결하며 정서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심리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에 가정용 전화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동통신요금이 높다는 비난에 휴대폰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흡사하다.
물가상승률이 7%에 육박하는 고물가로 고통을 받던 때였던지라 경제기획원·체신부와의 힘겨루기 끝에 시분제 도입은 1년 연기되었다. 사방에서 전화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뉴스는 가구 전화비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다방·음식점에서는 서둘러 공중전화를 설치했고 어떤 관공서는 부서별로 10대 중 한 대만 발신용으로 지정 조처하기도 했다. 어려운 시절 뭐든 아껴 써야 할 아이템이 하나 더 는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