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 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13〉시분제(時分制), 이제부터는 집 전화도 아껴 써야!

1990년 시분제의 시행을 알리는 신문 광고(옛 한국전기통신공사)
1990년 시분제의 시행을 알리는 신문 광고(옛 한국전기통신공사)
1990년 시분제의 시행을 알리는 신문 광고(옛 한국전기통신공사)
1990년 시분제의 시행을 알리는 신문 광고(옛 한국전기통신공사)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집 전화 요금을, 한 통화 3분당 25원으로 하는 시분제를 도입한 것은 1990년 1월이다. 이전에는 전화 한 번 걸면 같은 요금으로 몇 시간이고 통화할 수 있었다. 일부 통화자가 전체 통화 시간 중 엄청난 비중을 점유하는 '20/80 룰'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일었다. KT는 '내가 사용하는 전화선 다른 사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분제 도입을 알렸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집 전화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라고 명시되어 있다. 요금은 기본료·통화료로 구성된다. 통화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기본료는 원칙대로라면 가구 전용으로 부설된 전화선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야 하지만, 그러자니 가구 지출에 너무 부담되고, 통화료는 국민이 이용하는데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낮게 설정되었다. 시내전화 부문은 늘 만성적자에 시달려 프리미엄 서비스인 국제·시외전화 부문의 흑자로 보전되었다. 문제는 프리미엄 이용자가 원가보다 훨 높은 요금을 지불 해야 하기에 '부담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방 압박으로 국제·시외전화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이 같은 '내부보조' 관행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국제·시외전화 요금은 인하하고 시분제로 시내전화 요금은 인상하는 '요금 재조정'은 주요 정책 과제였다.

쉽지는 않았다. 요금을 낮추는 건 누구나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에 정치인이고 공무원이고 요금인하는 앞장서서 떠들어대지만, 인상해야 할 때는 하나같이 함구(緘口)한다. 198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엄청난 인플레와 실업이 병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기에 가구에 부담되는 시분제 도입은 민감한 이슈일 수밖에 없었다. 1998년 옛 통신개발연구원(KISDI)가 개최한 공청회에서는 이점을 적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발언이 눈에 띈다. 국민이 집 전화사용에 익숙해져 요금인상에도 사용량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인상분은 고스란히 KT의 수익이 되리라는 지적이다. 규모는 500억 원정도로 투자비로 환산하면 1조원가량으로 추정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다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연결하며 정서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심리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에 가정용 전화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동통신요금이 높다는 비난에 휴대폰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흡사하다.

물가상승률이 7%에 육박하는 고물가로 고통을 받던 때였던지라 경제기획원·체신부와의 힘겨루기 끝에 시분제 도입은 1년 연기되었다. 사방에서 전화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뉴스는 가구 전화비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다방·음식점에서는 서둘러 공중전화를 설치했고 어떤 관공서는 부서별로 10대 중 한 대만 발신용으로 지정 조처하기도 했다. 어려운 시절 뭐든 아껴 써야 할 아이템이 하나 더 는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