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자체 생산 시도는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AI 기술 구현에 HBM이 필수인 만큼 해외 의존하지 않고 자체 기술과 공급망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궁극적으로는 AI 패권을 쥐려는 발걸음인 셈이다.
현재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과 미국 마이크론이 주도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 메모리 업체가 90%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미국이 HBM에 대한 추가 수출 규제 검토하는 만큼, 중국은 자체 HBM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제한으로 고성능 AI 반도체(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AI 가속기에 함께 탑재할 고성능 HBM의 수요 또한 많지 않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제품이 HBM2(2세대)”라며 “AI 가속기 성능 자체가 낮기 때문에 최신 HBM3E(5세대)까지는 당장 필요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국산 구세대 HBM을 주로 공급받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HBM은 삼성전자 HBM2라는 후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한국 HBM에만 의존할 순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HBM 공정 전환을 진행, 구세대 HBM 역시 공급이 축소될 수 있어서다. 미국 견제로 HBM 수급 자체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특히 AI 시장에서 패권을 쥐려는 중국 입장으로는 HBM 독자 공급망이 필수다. 중국 정보기술(IT) 빅테크 주도로 AI 서비스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AI 인프라 투자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의 클라우드 인프라 설비 투자 규모는 92억달러(약 12조7300억원)다.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는데, 알리바바·화웨이·텐센트 주도로 AI 서비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카날리스는 분석했다.
AI 인프라 핵심 요소인 AI 가속기 경우, 엔비디아·AMD가 미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중국용 칩'을 따로 개발해 공급할 정도다. 여기에 화웨이가 작년 AI 가속기(어센드 910B)를 상용화하고,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가 브로드컴과 협력해 AI 칩 개발에 뛰어드는 등 자체 AI 가속기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중국 AI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AI 서비스-AI 인프라(서버)-AI 가속기'에 이어 HBM라는 안정적 가치사슬이 엮여져야 한다. HBM이 중국 AI 패권 확보를 위한 마지막 퍼즐인 셈이다.
중국은 우선 HBM2·HBM2E 자체 개발·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자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가속기의 HBM 수요에 맞춘 단기 전략이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 양상을 보면, 점진적으로 성능 고도화에 나서 HBM3·HBM3E 등 고성능 제품까지 손을 뻗을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은 기술 격차가 있지만 중국 메모리 기업이 HBM 시장에서 치고 올라온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도 경쟁이 불가피하다. 특히 막대한 중국 정부 지원이 이같은 위협론에 힘을 싣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독자적으로 7나노미터(㎚) 칩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며 “AI 가속기에 이어 HBM 역시 미국 견제를 회피해가며 기술 및 생산 능력 확보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美 수출 제한에 수급 차질
AI 가치사슬 '마지막 퍼즐'
삼성·SK하이닉스 경쟁 불가피
中정부 막대한 지원 위협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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