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의미는 '때려 부수거나 깨트려 헐어버림' '조직, 질서, 관계 따위를 와해하거나 무너트림'이다. 전쟁이 대표적이다. 생명, 신체, 재산, 윤리, 문화 등 문명사회가 쌓아올린 모든 것과 인간 자체를 파괴한다. 상실, 고통, 분노, 갈등을 수반한다. 경제영역은 어떨까. 혁신을 위해 기존 가치를 파괴하면 창조적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정당한 걸까.
철학자 니체(1844~1900)는 낡은 전통을 파괴하고 인간 가치를 찾자고 했다. 중세에선 기독교 신이 모든 가치를 대변했다. 천국은 진실이고 현실은 거짓이다. 조직, 사상, 문화, 규범, 제도 등 모든 것은 절대자인 신을 중심에 뒀다. 현실에서 인간 욕구와 가치는 부정당했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신 앞에 평등하므로 개인의 개성과 우위를 드러낼 수 없었다. 교회, 황제,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나머지는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복종의 삶을 살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신 그 자체보다는 중세의 낡은 전통을 거부했다. 그곳에 갇힌 인간 가치의 부활을 요구했다. 이성과 과학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능동적인 인간의 삶을 찾았다. 여기서 기독교적 전통에 숨죽여 살며 종교적 불법인 이익을 내던 상공업자가 등장한다. 신학자 장 칼뱅은 신의 구원 여부는 이미 결정됐으니 믿고 직업에 충실하라고 설교했다. 상공업적 돈벌이에 종교적 면죄부를 줬다. 니체와 칼뱅은 중세의 종교적 전통을 파괴했다. 개인에 의한 가치와 부의 창조를 정당화했다. 경제를 존중하는 자본주의는 중세 가치관의 창조적 파괴에서 나왔다.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1863~1941)가 처음 사용했다. 숲을 파괴하면 목재가 줄어든다. 그것뿐이면 파괴에 그친다. 목재 부족이 난방용 석탄 등 대체품 발명을 촉진했다면 파괴가 창조를 촉진한 것이다. 전쟁은 정치적 이권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무기, 식량, 군복, 항공기, 군함을 공급받기 위해 제조업, 조선업, 섬유업 등 민간 산업을 성장시킨다. 전쟁준비, 군비경쟁도 민간 생산성을 높이고 부를 창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부수적 효과에 그친다. 민간 산업을 위해 인류사에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순 없다. 창조를 이유로 파괴를 무한정 허용할 수 없는 이유다.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파괴의 한계를 깨닫고 시장 혁신을 위해 창조적 파괴를 변형했다.
현대국가에서 혁신을 위한다는 것만으로 파괴를 용인하긴 더욱 어렵다. 영토, 국민, 주권 등 국가 공동체의 근본과 가치를 훼손해선 안된다. 사람의 생명, 신체와 재산에 위험을 줘서도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파괴대상을 정치, 사회, 문화영역이 아닌 경제영역에 국한한다. 통신산업은 3G, 4G의 가치를 저평가하면서 5G, 6G로 발전했다. 가전, 휴대폰, 인공지능(AI) 등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멀쩡한 기존 기술을 '옛것'으로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려면 기존 가치를 부정하거나 저평가해야 한다. 과거 기술, 산업과 시장을 경기침체 원인으로 돌린다. 그래야 성장을 뒷받침할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이것이 조지프 슘페터 혁신의 시작이다. 파괴목적은 특정 기업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성장에 둬야 한다. 파괴대상도 경제시스템 중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난에 직면한 낡은 산업과 시장이다. 파괴주체도 기업가를 중심에 둔다. 기업가정신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다. 기업가 이외의 파괴주체를 상정하면 법제도를 통한 통제가 어렵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슘페터 혁신은 21세기에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경기침체기엔 더욱 그렇다. 창조적 파괴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첨단기술로 일자리가 많이 없어져도 그 이론은 타당할까. 파괴과정에서 격차와 갈등이 커지고 번져도 될까. 세계화를 통한 성장은 끝을 보이고 국가이기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파괴적 혁신이 먹히지 않으면 과감하게 다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