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통신 정책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집 전화 시장의 '마지막 1마일 경쟁(last one mile competition)'의 실현과 돈 걱정 없이 전화를 마음껏 쓰는 '정액제 요금'의 도입에 있었다. 자본·고정비가 많이 들기에 시장에 맡기지 못하고 국가가 관여했고 가가호호 전화선 부설을 신성한 의무로 여겼다. '1가구 1 전화'에 이르는 데 80여년 걸렸다. 오랜 세월 규모의 경제로 자연 독점이 된 시장에 경쟁을 도입한다는 것은 난제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였다. 2000년 국내에서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염두에 둔 하나로텔레콤이 진입해 1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이용자가 요금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서비스를 마음껏 쓰게 하겠다는 정액제 요금 정책의 로망이 실현된 것은 2001년이었다. KT는 '이제 시내·시외 전화 마음껏 통화하세요!' '1000원씩만 더 내면 시내·외 전화, 무제한 통화!'라며 홍보했다. 의도는 통상적인 수익 증대와는 사뭇 달랐다. 1990년대 말부터 이동통신의 활성화로 유무선 간 수요 대체가 심각해지자 집 전화 수요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KT의 요금제 출시는 집 전화 시장에 갓 뛰어든 하나로텔레콤에 유탄으로 튀었다. 가입자 수가 적어 단가는 높은데 요금은 KT보다 낮게 설정해야 하니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민영 KT의 횡포, 온 국민의 힘으로 막아주십시오!'라는 정책 광고를 내놓았다. 독점적인 유선전화시장에 '가입자 선로 공동활용(LLU)'이나 '번호 이동성'과 같은 공정경쟁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읍소하면서 신규사업자에게는 거리 구분 없이 유선전화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KT의 정액제 요금의 도입이 후발 사업자의 자생력 등 시장 경쟁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우려해 1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인가제가 원취지에 맞춰 시행된 몇 안 되는 사례다. KT는 1000만 가입자가 서비스에 가입하는 성과를 얻었다. 반 정도가 추가로 낸 요금보다 더 많이 사용했지만, 다 합쳐보니 적으나마 이윤도 냈다. 요금제는 최근 1년간 월평균 지출액에 1000원을 얹으면 전화를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처음에는 공짜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가입해서 많이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평상시의 습관화된 통화 패턴으로 회귀했다. 이 요금상품을 기획한 Y사원(전 KT 상무)은 포상금을 받아 10%는 사회복지기금으로 헌납하고 해외 유학까지 갔다 왔다. 하나로텔레콤은 KT에 대응하기 위한 차별화로 무조건 월정액을 내면 통화가 가능한 정액제 요금상품을 출시했지만, 이 때문에 수익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집 전화 시장은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징검다리가 필요했기에, 마음껏 누리자는 정액제는 가입자 이탈 방지책으로 마련됐다. 정책이 기술과 시장 여건을 앞서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