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수평적 경쟁상태 Zero에서 균형을 깨고 독점상태 One을 만드는 '창조적 독점'을 내세웠다. 디지털시대는 경쟁자의 모든 정보가 시장에서 투명하게 공개된다. 경쟁에선 상대방을 서로 모방하며 조금 앞서는데 힘을 쏟을 뿐 시장을 뒤흔드는 혁신을 하진 못한다. 실적이 조금 오르면 잘한다고 착각한다. 마케팅 비용을 쓴 만큼의 효과에 불과하다. 경쟁자의 반격으로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는 '무늬만 혁신'에 갇힌다. 창조적 독점의 예를 보자. PDA를 기억하는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해 쓰는 작고 가벼운 컴퓨터다. 음악, 게임을 즐기거나 바코드 또는 GPS 스캐너와 결합해 산업용에 쓴다. 옛 휴대전화기는 어떤가. 전화기에 운세, 게임을 넣어 이용한다. 결과는 어떤가. PDA는 컴퓨터시장에 갇히고 휴대전화기는 전화기 시장에 갇혀 실패했다. 무엇에 밀렸을까. 스마트폰이다. 멋진 디자인의 전화기에 강력한 컴퓨터를 장착했다.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통신업체 전국 대리점을 판매망으로 활용했다. 전화기와 컴퓨터를 화학적, 문화적으로 융합해 시장을 석권했다.
창조적 독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소 10배 앞선 기술을 개발하라. 그 대신 경쟁업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방법을 택하지 마라. 경각심을 주고 방어할 기회를 줄 뿐이다. 큰 시장부터 뛰어드는 퍼스트무버가 되지 말라. 상륙작전의 첫 부대처럼 괴멸되기 쉽다. 작은 시장에서 먼저 성공하라. 기회를 기다려 큰 시장으로 옮기는 라스트무버가 좋다. 아마존은 인터넷에서 도서를 팔아 성공한 다음에야 온라인 거대 쇼핑몰로 진출했고 지금은 클라우드컴퓨팅 최고 기업이다. 우수한 인재를 모아 목표 중심의 팀을 구성하라. 간섭해선 안된다. 효과적인 광고, 유통, 물류시스템을 갖추어라. 제휴업체와 회원을 대폭 늘려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라. 기억에 각인되는 강력한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세상이 깜짝 놀랄 사업기회를 포착하라. 에어비앤비는 빠듯한 일정에 쫓기며 호텔을 전전하던 여행객에게 개인 집을 내어주어 현지인의 삶을 제공했다. 우버는 개인 운전자와 차량을 이용해 모빌리티의 수요와 공급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창조적 독점은 문제가 없을까. 독점의 왕관을 수여받기 위해선 그에 어울리는 창조가 있어야 한다. 옛날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조지 스티븐슨의 철도는 Zero에서 만들어진 One이다. 21세기에 그런 기술이 있을까. 거의 없다. 과거엔 오로지 개인의 창의와 끈기를 통해 신기술, 신산업이 창조되었다면 지금은 기존 기술들의 결합과 금융자본에 의한 창조가 대부분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출혈경쟁에 빠져 가격인하, 광고비지출로 많은 손실을 감수한다. 금융기관 등 자본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수적인데 수백 배로 되갚아야할 빚이다. 산업생태계를 떠받히는 공급, 유통, 배송업체, 소상공인, 근로자의 지원과 협력도 중요하다. 디지털 상품은 공장에서 완제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출시된 뒤에 피드백을 받아 성장한다. 인공지능(AI)은 고객과 공동체의 데이터를 학습 원료로 쓴다. 결국 디지털 산업은 금융기관, 투자자, 제휴업체, 고객과 공동체 지원 없이 만들 수 없다. 독점에 대해선 정부규제의 칼날도 날카롭다. 특정 기업만의 혁신만으로 창조적 독점을 하기 어렵고, 하더라도 위태롭다.
피터 틸의 창조적 독점은 기업중심의 비파괴적 시장우위 전략에 불과하다. 슘페터, 크리스텐슨 혁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디지털 시대엔 대기업이 수용하지 못하고 거기에 얽매이기 싫어 창업하거나 소규모, 1인 기업을 하는 디지털생활자가 많다. 누구든지 AI인프라를 쉽게 제공받아 사업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게 돕는 생태계와 법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창조적 독점은 기업 밖의 디지털생활자를 위해 혁신주체의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할 때 비로소 가치를 꽃피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