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학습된 무기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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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열심히 하면 지적받을 것도 늘어난다'.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강도가 세지고 있다. 정권이 끝난 후 다음 정권에서 혹시라도 책잡힐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하루이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관료 입에서 '무기력증'이라는 말이 서슴지 않게 나오는 걸 보면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방송 정책이 '정치 바람'에 휘말리며 미디어를 관할하는 두 부처에 무력감이 스미고 있다. 그간의 '학습 효과'가 극에 달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방송 정책에 대한 감사·수사가 이어졌고, 공무원이 피를 봤다. 실무자급 공무원들까지 조사 대상이 되고 심한 경우 징계나 수사 의뢰 대상이 됐다.

지난 22일 기준 방통위 전체 직원의 35.2%가 마음건강센터 심리지원 프로그램 진단 검사를 받았으며 적지 않은 직원의 스트레스 지수가 위험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 동량(棟樑)인 관료가 의욕을 잃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방송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0'건. 최근 2년간 정부 입법 등을 통해 구현된 미디어 정책은 전무하다. '방송콘텐츠대가 분쟁조정', '방송발전기금 운용 현황 및 개선', '미디어 통합법제 마련', '단말기유통법 폐지' 등 현안이 산적하다. 지금까지 수고했지만 조금 더 힘을 내야 할 때다.

물론 공무원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소신껏, 마음껏 일해달라'는 리더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새로 오면 하는 일이 '보완'이 아닌 '처벌'이면 어떤 공무원이 업무를 강단 있게 처리하겠는가. 공무원을 복지부동으로 내몰지 말자. 국민을 위해.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