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다. '따상', '따따상'을 이어갔던 이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상장 첫날 종가가 시초가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시초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상황도 적잖이 벌어진다.
신규상장기업이 밀려들지만, 충분한 '옥석가리기'가 이뤄지지 않았던 결과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총 132곳. 상장 기업 기준으로는 2000년대 초반 IT붐 이후 가장 많은 기업이 코스닥에 입성했지만, 정작 공모금액은 줄었다.
규모도 점차 작아지고 있다. 올해 코스닥에 진입한 기업의 평균 상장 자본금은 33억원에 불과하다. 2017년 신규 코스닥 진입 기업의 평균 자본금의 52억원의 3분의 2에도 못미칠 정도다.
이미 상장 문턱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크게 확대된 가격 제한폭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을 자극하고 있다.
청약 경쟁 열풍, 희망가를 크게 초과한 공모가, 따상·따따상 이후의 주가하락 그리고 보호예수 해제 지분 대량 매각은 어느새 공식이 됐다. 1년 넘게 이어진 이 공식에 피로가 쌓인 투자자는 다시 코스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격발견 기능 확대라는 명분으로 이뤄진 실험이 남긴 상처는 적지 않다. 이제 코스닥은 기술력 있는 유망기업을 위한 시장이라기보다는 적자기업도 쉽게 상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지적도 듣는다. 무자본 인수합병(M&A)세력은 활개를 치고 있지만 퇴출은 쉽지 않다.
코스닥은 벤처 투자의 중요한 회수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 기업에게나 문턱을 낮춰줘선 안된다.
기술주 중심의 시장이라는 당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시급하다. 내후년이면 코스닥도 30주년을 맞는다. 필요한 경우 부실·좀비기업은 빨리 퇴출시켜 시장 신뢰를 높여야 한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