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자 김위찬, 르네 마보안은 블루오션을 넘어 비파괴적 창조(Non-disruptive creation)를 주장한다. 기존 시장에서 옛것을 다투지 말고 시장 밖에서 새것을 만들라고 한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기존 산업 안에서 새것을 만드니 기존 시장, 기술, 일자리를 없애며 성장한다. 옛날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마차산업, 시장, 마부와 말 관련 일자리가 파괴됐다. 창조적 파괴에 따른 불안과 공포는 생존투쟁으로 이어지며 갈등과 대결로 치닫는다. 파괴의 단점이다. 블루오션은 뭘까. 레드오션은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상품끼리 극한경쟁을 하니 수익은 줄고 비용절감, 가격인하 등 출혈경쟁 외엔 답이 없다. 블루오션은 다르다. 기존 산업의 '경계'에서 새것을 만드는 데 없던 수요가 생긴다. 물론 기존 시장의 수요도 일부 넘어온다. 파괴와 비파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비파괴적 창조는 뭘까. 블루오션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 기존 산업의 '경계를 벗어난 곳'에서 새것을 만든다. 창출된 수요는 모두 새것이고 기존 시장에서 오지 않는다. 파괴 없는 혁신이다. 부작용이 거의 없다.
블루오션의 사례를 보자. 시력교정용 안경은 오디오북 시장의 경계에서 나왔다.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의 경계에서 나왔다. 전자책 리더는 종이책 시장의 경계에서 나왔다. 온라인 쇼핑은 오프라인 쇼핑의 경계에서 나왔다. 온라인 여행 영상은 오프라인 여행의 경계에서 나왔다. 로봇 배송은 오토바이 배송의 경계에서 나왔다. 비파괴적 창조엔 어떤 것이 있을까. 김치냉장고는 기존 냉장고를 파괴하지 않는다. 사이버 보안은 오프라인 보안을 파괴하지 않는다. 어린이 영어방송은 영어 유치원, 도서관을 파괴하지 않는다. 우연한 발견에서도 혁신이 가능하다. 심장병 치료제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됐다. 불량 접착제 포스트잇은 누구나 쓰는 사무용품이 됐다.
비파괴적 창조의 장점은 뭘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시장 규모를 키우고 새 시장을 만든다. 기존의 산업, 기술,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 공동체에 미치는 피해를 줄이고 모두가 상생한다. 기존 경쟁을 훼손하지 않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 뮤직낫임파서블은 1인당 착용형 진동 감지기 24개를 청각장애인에게 제공하고 음악 콘서트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해 비파괴적 혁신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면 디지털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혁신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없을까. 첫째, 혁신 공간을 기존 시장 안, 경계와 밖으로 칼로 베듯 나누는 형식적 분류는 융·복합 시대에 불가능하다. 둘째, 비파괴적 창조를 강조하면 대기업 등 기득권과 싸움을 통해 시장을 바꾸려는 노력을 약화시킨다. 기존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이 그의 이론을 반기는 이유다. 기존 기업은 ESG 등 공익활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있는 시장을 도움으로써 혁신 부족에 대한 면죄부를 얻는다. 그렇다. '파괴적' 혁신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영역이 있다. 혁신 없는 독과점 시장에선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싸워 파괴해야 한다. 혁신이 마른 행주를 쥐어짜듯 생태계를 착취해서도 안된다. 제휴업체, 소상공인, 근로자는 산업과 시장 생태계를 가꾸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그들을 존중하고 함께 혁신해야 진정한 비파괴적 창조다. 셋째, 기업만으로 비파괴적 혁신을 하긴 어렵다. 지구경제권이 '닫힌 경제권'에서 온라인 '열린 경제권'으로 발전했다. 이젠 기업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다. 블루오션이나 신산업을 더는 찾기 어렵다. 기계, AI, 신기술로 사람 일자리가 줄면서 비용절감을 했지만 아이디어 공급원도 고갈됐다. 사람 없이 AI만으로 창의가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AI기술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혁신주체를 기업에서 디지털생활자로 바꿔야 한다. 작지만 다양한 시장을 많이 만드는 혁신이 불길처럼 일어야 비파괴적 창조가 성공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