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후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화비 부담 때문에 집에서 전화 대신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을 주저했다. 하지만, 망설임은 점차 무뎌지면서 휴대폰 이용이 자연스러워졌다. 유선 인프라를 자부하던 KT로서는 휴대폰 요금 수준의 집 전화(Land)에서 이동전화(Mobile)로 거는 'LM 통화' 수익 감소는 치명적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안방 발신 통화 시장'을 필사적으로 방어하려는 KT와 이 틈새를 본격적으로 파고들려는 타사 간 경쟁이 격화됐다. 2005년 KT는 휴대폰과 유사 기능을 가진 '안(Ann)'이라는 코드리스 전화를 보급했다. 저렴한 문자메시지(SMS) 요금을 무기 삼아 '통화만 하던 집 전화로 폼나게 문자를 날린다'며 홍보했다. 이듬해 LG텔레콤은 '기분 존(Zone)'이라는 '유무선 대체(FMS:Fixed Mobile Substitution)' 서비스로 출사표를 던졌다.
전용 휴대폰으로 반경 30m 내에서 집 전화 수준의 저렴한 요금으로 전화하는 서비스였다. '집 나간 전화를 찾습니다'라는 거리 퍼포먼스를 펼쳤고 유선전화를 등장시켜 'SK텔레콤·KTF는 가만있는데 왜 LG텔레콤만 저희를 이토록 못살게 구는 겁니까?'라며 호소하는 모습도 광고로 내보냈다. 유선과 달리 거리별 차별이 없다는 '시내전화일까? 시외전화일까?'라는 광고가 나오자 급기야 KT는 발끈해 역무 침해로 통신위원회에 제소했다. 유선전화로 오해받지 않도록 광고를 중단하고 존 외 지역의 이용자를 부당히 차별하지 않도록 요금할인을 조처했다. 시대는 융합이라는데 제도는 '네 것 내 것' 구분하던 시절이었다.
2009년 KT가 와이파이로 인터넷 전화도 쓸 수 있는 '쿡&쇼'를 출시하자, SK텔레콤은 집·사무실 주변의 기지국 반경 내에서 인터넷 전화 요금을 적용받는 'T존'을 내놓았다. 이동이 잦으면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KT 서비스를, 반대라면 SK텔레콤이 유리했다. SK텔레콤은 여성이 전화선을 가위로 잘라 애완견 목줄로 사용하거나 배우 장동건이 집 전화를 발로 찬 후 휴대폰을 찾아 자장면을 시키는 도발적인 광고를 내보냈다.
KT는 2001년에 맛본 정액제 요금 성공의 달콤함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안방 사수를 위해 2007년 한 통화로 길게, 또는 한도 내에서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 출시로 대응했다. 삼각관계에서 채인 연인 이나영이 울먹이며 한 시간만 이야기하자며 '긴~통화는 KT 전화로!'라고 광고했다. 2000원 추가하면 시내·외 전화를 3분 39원에 이용할 수 있던 '전국 단일요금제'는 2009년 이후 3년 약정을 조건으로 모든 이용자에게 개방됐다.
정보기술(IT)은 변화무쌍하다. 새것이라고 생각하고 열띠게 논의하던 이슈가 조금만 지나면 헌것이 된다. 방심하면 트렌드를 놓치고 평생 본다손 치더라도 변화의 일부 궤적에 불과하다. 한 지인은 평생을 네트워크 관련 일에 종사했는데 패러다임이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자괴감마저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잊히고 무의미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 혁신과 도태의 변화를 거쳤기에 우리가 당연시하는 현재가 있고 그 기반 위에 탄탄한 진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필자가 과거를 문서로 남기는 이유기도 하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