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여파로 위축됐던 국내 임상시험 승인이 지난달을 기점으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임상시험이 다시 힘을 받고 있어서다. 하지만 대형병원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임상시험 승인과 별개로 실제 수행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9일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총 81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58건)과 비교해 39.6%(23건) 늘어난 수치로, 이는 지난 2월 의정 갈등 시작 후 처음이다.
국내 임상시험은 올해 1월과 2월 각각 83건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여건 가량 앞섰다. 2월 말 전공의 집단사직을 시작으로 의정갈등이 본격화된 3월부터 7월까지는 모두 전년 동월 대비 승인 건수가 줄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임상시험 승인 규모(499건)는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낮았다.
8월 들어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지난해 대비 늘어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임상시험에 속도를 내면서 전반적인 반등을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승인된 임상시험 중 다국적 제약사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비중은 지난 3월 27%에서 7월에는 44.7%까지 늘었다.
여기에 의정갈등에 따른 개발 일정 차질을 우려해 우선 임상시험 승인부터 받으려는 제약사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승인된 임상시험 70% 가까이가 대규모 인력 투입 부담이 적은 임상1상 이하라는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의정갈등 영향으로 임상시험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대부분 오랜 기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데다 타임라인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면서 “예정된 임상시험은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임상시험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8월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적어 올해 기저효과를 보인 데다 여전히 병원에선 인력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승인 건수가 늘었다고 해서 실제 수행까지 원활히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백선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본부장은 “최근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늘었지만, 통상 승인 심사가 6~12개월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의정갈등 이전인 지난해 말이나 올 초 신청한 게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면서 “승인된 임상시험이 늘었다고 해도 이를 수행할 의사들이 여전히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제대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갈등 이후 신청한 임상시험 승인 여부가 4분기부터 본격 반영될 예정인 만큼 반등 혹은 위축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 역시 이때로 보고 있다. 제약업계는 임상시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전공의 복귀를 포함한 대형병원 의사 인력난 해소가 필수라고 본다. 환자 진료와 수술을 담당할 의사도 부족한 판에 임상시험까지 수행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들어 이달 8일까지 병원이 주도한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총 6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1.7%(20건) 줄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당장 환자 진료도 중요하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도 의미가 큰 만큼 포기하긴 어렵다”면서 “빠른 시일 내 갈등이 봉합되고 인적자원에 숨통을 터야 의미 있는 연구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