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협력 생산 거점 확보
美·유럽 진출 규제 우회 가능성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이 한국에 상륙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CATL이 한국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CATL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한국에 정식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기를 묻는 질문에 “곧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준비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내비쳤다.
CATL은 그동안 한국에 사무소를 두고, 고객사에 사후관리 등 주로 기술 지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이 조직을 격상하려는 건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모회사에 종속돼 운영되는 사무소나 지사와 달리 법인은 현지에 자본금을 투자해 설립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독립된 기업이 되기 때문에 자체적인 비지니스와 경영 활동에 나서게 된다.
CATL의 한국 진출은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CATL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업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출하량 기준 CATL 점유율은 35.9%로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배터리 3사는 합산 점유율이 19.9%에 그쳤다. CATL은 강점을 가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국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공략을 강화할 전망이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가 주로 생산하는 삼원계(NCM·NCA) 배터리 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무겁지만 안전성이 높고 가격이 30% 이상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LFP 채택을 늘리고 있다.
CATL은 또 한국을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 등으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규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과 협력이나 한국 내 생산거점 확보 등을 통해 규제를 우회해 유럽과 북미 시장 진출을 추진하려는 시도다.
실제 중국 배터리 관련 업체들의 한국 진출은 늘고 있다. 선도지능, 항커커지, 리릭로봇 등 배터리 장비사가 한국에 지사를 세우거나 국내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에스볼트는 2020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BYD는 2016년 한국법인 설립하고 상용차 판매에 이어 승용차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전기차 수요가 정체를 보이는 가운데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ESS 시장 공략도 점쳐진다. CATL은 글로벌 ESS 시장에서도 약 40%를 점유하고 있는 1위 기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CATL의 한국법인 설립은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과 기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면서 “사용후배터리 재활용이나 ESS 등 분야에서 국내 기업과 협력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