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팔각 모양의 건물에 들어서자 '플루티'한 와인향이 가득 느껴진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감귤 와인을 만드는 제주양조장이다. 와인은 통상 포도로 만들지만, 제주양조장은 제주에서 자란 감귤을 활용한 '1950' 와인을 선보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 중심에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박종명 제주양조장 대표가 있다.
감귤은 제주의 대표 작물 중 하나다. 실제 제주를 다니다 보면 감귤나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된 감귤이 모두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품질과 당도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외관상 결함이 있거나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지만, 먹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은 '파지상품(정상적인 상품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농산물)'으로 분류돼 폐기된다.
감귤로 와인을 만든다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고안하게 됐다.
박종명 대표는 “이전 법무법인에서 파산 업무를 할 때 매각하는 채권 중 감귤밭이 있었고, 버려지는 감귤을 술로 만들어보고 싶어 농업진흥청 감귤연구소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감귤와인을)시작하게 됐다”면서 “시장에 상품으로 팔 수 없는 감귤을 연 40톤 정도 사용해 지난해 와인 4만병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제주양조장 대표 상품은 '1950 감귤와인'과 '1950 천혜향와인'이다. '1950'은 한국의 가장 높은 한라산 정상(1950m)을 뜻하며 '한라산 정상에서 만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양조장이 만든 와인들은 2010년 한·중·일 정상회담 공식 건배주, 2010 G20 정상회의 공식 만찬주 등으로 선정됐고, 제주 면세점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양조장은 올해 15% 증가한 4만6000병을 생산할 계획이다. 최근 제주에서 재배를 시작한 샤인 머스캣으로 와인 종류도 확장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이번에 제주도 16개 농가에서 샤인머스캣을 생산했고, 상품으로 나가지 못한 것을 수매해 최근 제조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제주 생산 감귤 등 과일로 와인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려움도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등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다 보니 투자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 제주양조장은 올해 제주도 지원을 받아 양조장을 확대하려 했지만 관련 예산이 삭감돼 무기한 연기됐다.
박 대표는 “전통주를 만드는 회사들이 영세해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지역 특산주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 갖지 않으면 항상 그 걸음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제주양조장은 생산 시설을 지금의 10배 수준으로 키우고, 생산량을 연간 40만병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생산 품목도 다양한 감귤 품목으로 다양화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박 대표는 “포도도 산지에 따라 와인 맛이 다르듯 감귤도 원물에 따라 다른 와인 맛이 난다”면서 “최근 제주에서 다양한 감귤이 자라나는 만큼 다양한 감귤 와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