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이 갈라파고스 섬에 다녀왔다면서 멋진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섬 이름이 매우 친숙하다 싶었는데 '갈라파고스 규제'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었다. 머나먼 남태평양의 외딴섬은 우리나라 규제 환경 비유에 자주 등장한다. 갈라파고스는 고유종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천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지명이 전해주는 긍정적인 의미에 집중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면서 고유의 경쟁력을 유지하게 하고, 산업 생태계를 살리고 있는가. 세계 4위의 게임 산업 강국, 콘텐츠 산업 수출 기여도 1위. 한국의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며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의 규제 환경은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공정한 게임의 룰 마련'.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24~2028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에서 사용한 문구다. 문체부는 이용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썼겠지만,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에게도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구글·애플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매출의 대부분을 게임 분야에서 얻어가고 있다. 이들은 인앱결제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훨씬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특히 중소 게임사에 커다란 부담을 주어 많은 게임사가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중소게임사가 플랫폼 독과점에 따른 손해배상 집단 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올해 초 애플은 EU에서의 반독점 규제 효과로 해당 지역의 수수료를 대폭 인하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언제쯤이면 수수료 인하 적용을 받을 수 있을까.
확률형 아이템, 게임 심의, 청소년 보호, 저작권, 개인정보보호 등 다양한 규제는 국내 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해외 기업들은 규제 회피를 쉽게 할 수 있다. 양산형 중국산 게임들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표기를 하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허위 광고도 넘쳐난다. 저작권 침해나 게임 서비스 부실 운영 사례도 다수이지만,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국내 상황과는 다르게 중국은 자국 기업에 유리하도록 강력한 규제 환경을 만들고 있다. 게임을 출시하려면 반드시 정부의 사전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외국 기업의 게임 서비스 허가를 제한하고 있다. 중국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 또한 필수 요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게임을 출시하고 외국 기업은 까다로운 절차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판호는 중국 내 게임 유통에 필요한 허가증인데 한국 게임들은 수년 동안 판호를 받지 못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던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러한 자국 기업 보호 정책에 힘입은걸까. 중국의 게임산업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중국 게임들은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도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규제가 더해질수록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과도한 규제도, 모호한 규제도 산업 성장에는 방해가 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규제 리스크 해소에 힘을 쏟는 것은 기업들에게 크나큰 손실이다. 게임산업 지원과 규제 혁신으로 K게임의 레벨 업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게임산업 진흥 계획을 간절히 믿고 싶다. 게임 질병코드 이슈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길 바란다. 정부와 국회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없애는데 힘을 합치고, 해외 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 혁신과 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주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게임 생태계를 살리는 규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지현 한국게임자율정책기구 이사·한국PR협회 부회장 brand9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