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 발굴에 본격 뛰어들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등 차세대 메모리 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기술로 급부상한 첨단 패키징 시장 공략에 나섰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과 설계·제조 기업의 차별화된 신기술이 '반도체 대전(SEDEX) 2024'에 총출동했다.
◇HBM·CXL 차세대 메모리부터 우주·국방 반도체 공략하는 소부장 기업
엑시콘은 CXL 검사 장비를 공개했다. CXL은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메모리 간 데이터 연결을 효율화,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규 인터페이스다. AI 확산에 따라 차세대 메모리로 손꼽힌다. 엑시콘은 현재 CXL 1.1 기반 D램 검사 장비(i3800)를 상용화했다.
내년 3분기 목표로, CXL 2.0 검사 장비 개발 소식도 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검사 속도가 더 빠르고 영하 60도와 영상 150도 등 극한의 조건에서도 동작이 가능한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코세라믹스는 HBM 공정을 위한 '펄스 히터'를 선보였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제조하는데, D램을 서로 붙이려면 TC 본더라는 장비가 필요하다. 펄스 히터는 이 장비의 필수 소모품이다. 대부분 일본산이었으나 미코세라믹스는 자체 기술로 개발, 국산화에 성공했다.
큐알티는 우주·국방용 반도체 '신뢰성 평가 솔루션'을 공개했다. 우주·국방용 반도체 성능과 안정성을 파악하기 위한 장비와 검사 역량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다. 첨단 반도체는 워낙 고가라 사전에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큐알티는 기존 중성자 빔을 양성자 검사 방식으로 전환,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소재, 초미세 공정·첨단 패키징 정조준
AI 시대 첨단 반도체는 초미세 공정이 필수다. 수나노미터(㎚)급 회로 구현이 필요해서다.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수요가 늘어난 이유다.
에프에스티는 EUV 공정 전환에 대응, 펠리클 기술을 공개했다. EUV 펠리클은 반도체 회로를 미리 새겨둔 포토마스크를 보호하는 소재다. 포토마스크가 수억원에 달하는 고가라 펠리클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에프에스티는 EUV 펠리클 투과율 95% 수준을 달성했다. 투과율은 펠리클 성능을 가늠하는 지표로, 보통 90% 이상 투과율을 확보해야 반도체 생산라인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프에스티는 EUV 펠리클 핵심 구성요소인 프레임도 자체 설계했다고 부연했다.
켐트로닉스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필수인 감광액(포토레지스트·PR) 원료 'PGMEA'를 반도체 대전에서 최초 공개했다. PGMEA는 감광액 원료 비중의 70~80%를 차지한다. 켐트로닉스 관계자는 “PGMEA 순도가 99.999%(5N)급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초고순도인만큼 EUV용 감광액에도 활용할 수 있다. 켐트로닉스는 PGMEA를 포함, 반도체 소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자체 브랜드인 '퓨리솔(Purisol)'도 이번에 발표했다.
첨단 패키징 시장을 겨냥한 소재 기업의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동진쎄미켐이 대표적이다. 동진쎄미켐은 HBM과 하이브리드본딩(HCB)용 화학적기계연마(CMP) 슬러리 기술을 선보였다. HBM을 만들 때 D램을 적층한 후 미세 구멍으로 구리(Cu)를 채우는데, 이후 평탄화할 때 쓰는 핵심 소재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솔더볼 없이 구리와 구리가 맞닿는 구조이라 CMP 슬러리 중요성이 훨씬 커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 업계 미래 먹거리 'AI·자동차'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행보에 반도체 설계 기업들도 가세했다. 세미파이브는 AI 시장을 정조준한 '칩렛 솔루션' 기술을 선보였다. 칩렛은 서로 다른 반도체를 연결, 성능을 극대화한 첨단 패키징 기술로, 설계 시장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설계 단계부터 칩렛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세미파이브는 여러 반도체 코어를 연결해 하나의 플랫폼처럼 제공하는 설계 기술을 공개했다.
LX세미콘은 차량용 반도체에 힘을 줬다. TV나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사업이 주력인데 여기에 더해 차량용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것이다. LX세미콘이 자랑하는 DDI 기술력을 녹여낸 차량용 DDI와 모터를 제어하는 모터구동칩, 각종 전장 부품을 위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기술을 소개했다.
퀄리타스반도체는 고화질 디스플레이 신호 연결을 위한 DSI-2 컨트롤러 반도체 설계자산(IP)을 활용, 실제 영상을 구현하는 모습을 시연해 주목을 받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차세대 메모리 공개
이날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HBM과 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 차세대 메모리 실물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나노 공정을 활용, 실제 인공위성의 2만2000분의 1 크기 조각품을 선보이며 초미세 공정 기술력을 뽐냈다.
SK하이닉스는 2027년 첫 공장이 준공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미래 전략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50여개 소부장 기업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미니 팹 등을 소개, 반도체 협력 생태계를 강조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