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국 재계가 비상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2기 행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 폐기는 물론 트럼프1기 때와도 비교해 경제·산업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고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린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기업들 셈법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운 재계로서는 새롭게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재계는 트럼프 당선인 공약 중 '미국 내 투자한 외국기업의 혜택 축소'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 “정말 나쁜 거래”라고 언급하며 폐지·축소 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
칩스법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 공장 투자로 64억달러(약 8조9700억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투자로 4억5000만달러(약 6300억원) 보조금을 미국 정부로부터 각각 약속받았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2030년까지 총 400억달러(약 56조원),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약 5조4200억원)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나 보조금 축소 등이 이뤄지면 투자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다.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 무력화뿐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 판매한 배터리셀과 모듈에 대한 세제 혜택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까지 축소·무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내 이차전지 기업은 전기차 캐즘에 더해 가뜩이나 실적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중고를 겪을 전망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트럼프 2기 정부가 IRA를 축소하면 현대차그룹이 공격적으로 추진해 온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수입차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면 한국발 대미 수출 차량의 가격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가 공언한 IRA 축소나 폐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제품 경쟁력을 지속 강화하면서 조지아주 전동화 신공장(HMGMA) 등 현지 생산 능력을 확대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트럼프 정책에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압박과 자국 투자 확대를 위해 반도체법 상 가드레일 조항과 보조금 수령을 위한 동맹국 투자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한국, 대만, 일본, 유럽 반도체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아닌,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하는 정책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윤희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IRA 전면 폐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청정에너지 투자세액공제(ITC)와 생산세액공제(PTC) 등 핵심 프로그램에서의 세액공제 대상이나 공제 규모가 조정될 수 있어 국내 배터리·태양광·풍력 기업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