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 자리를 두고 ASML과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가 다시 맞붙는다. 지난해 처음으로 반도체 장비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한 ASML이 올해도 왕좌를 지켜나갈지 주목된다. ASML과 어플라이드는 제품 포트폴리오가 달라 직접 경쟁하지는 않지만, 반도체 장비 수요 변화를 가늠할 주요 지표가 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ASML과 미국 어플라이드의 3분기 누적 매출은 각각 약 201억4500만달러와 204억6900만달러로 집계됐다. 어플라이드가 소폭 우세한 상황으로 현재까지 매출 1위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사로 이름을 올리는 건 4분기 실적에 달렸다. 양사 4분기 전망치(가이던스)에 따르면, 올해 최종 실적 전망은 ASML이 296억8700만달러, 어플라이드가 276억1900만달러로 예상된다. 최근 몇년간 ASML은 4분기 매출이 가장 좋았던 만큼 우위가 점처진다. 이 경우 2년 연속 '세계 최대 장비사' 자리를 지킬 수 있다.
2023년 전까지 업계에서 최대 매출을 기록해왔던 건 어플라이드였다. 지난해 처음 ASML이 어플라이드를 앞질렀는데, 초미세 회로를 그리는데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역할이 컸다. 워낙 고가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ASML만 공급하고 있어 수요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매출 성과를 거뒀다. ASML 매출 가운데 EUV 노광 장비 비중은 30% 이상이다. EUV 노광장비는 한대에 2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다만 제품 포트폴리오가 제한적이고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은 ASML에 '리스크'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 ASML까지 수출 제재에 동참할 것을 지속 압박 중이다. 상대적으로 중국 매출 비중이 큰 ASML은 직접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최근 ASML은 신규 수주 감소로 시장 전망보다 낮은 3분기 실적을 기록했는데, 중국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50%에 가깝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노광 장비만 공급하는 ASML은 시장 수요 감소나 수출 규제 등 대외 영향을 상쇄시킬 제품 포트폴리오가 부족하다”며 “또 첨단 장비 가격이 너무 고가인만큼 반도체 칩 제조사 역시 대량 발주를 신중하게 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어플라이드는 노광 장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반도체 공정 장비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EUV 공정 단계를 줄일 수 있는 장비까지 개발했는데,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ASML의 EUV 장비 필요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어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급성장하는 첨단 패키징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도 확보,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어플라이드 장비 수요에 힘입어 8월~10월(회계연도 4분기) 역대 최고 분기 매출을 기록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