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육격차 해소 역행 우려
학교현장·개발업체 혼란 빠져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적용될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의 지위를 잃을 상황에 놓였다. 당장 교과서 선정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학교 현장과 교과서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AI 교육업계의 혼란이 우려된다.
1일 관련업계와 교육당국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뒀다.
민주당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도록 했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 문해력 문제 등을 지적하며 의무 사용 대상인 교과서에서 제외하겠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일부만 선별적으로 사용할 경우 정책의 가장 큰 목표인 교육격차 해소 달성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교과서는 무상교육 범위로 국가가 재정을 지원할 수 있지만 교육자료는 그렇지 않아 이를 수용하는 학교와 학부모에 비용 부담이 증가한다. 사용 여부가 학교장 재량에 달리게 돼 재정 여건에 따라 사용 여부 차이가 나며, 이는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국정교과서가 아닌 경우 국가 검정 절차를 거치지 않아 내용과 기술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디지털 교과서 도입의)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격차 해소인데 그걸 역행하는 악법”이라며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 정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에 정치 논리를 끌어들여 혼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재범 한국교총 정책자문위원은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습 지원이 학생,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나온 정책인데 선별적으로 하게 되면 교육격차 해소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어디까지나 교육적인 문제로 논의해야 하는 사안을 정치논리로 풀어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은 또한 “AI 디지털교과서는 발전 가능성이 큰 정책으로 산업 육성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교과서가 아닐 경우 지금까지 투입된 매몰비용에 더해 기회비용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재식 교사노조 교섭실장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면 현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라며 “AI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져야 해 일정이 매우 촉박해진다”고 지적했다.
당장 2년여간 수십억원을 들여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투자했던 업계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간 국정 교과서 채택을 목적으로 수십개 업체가 수년간 각각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을 진행했다는 점에서다. 실제 AI 디지털교과서는 21개사가 146종을 제출해 검정을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12개사의 76종이 심사를 통과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십억원을 들여 준비했는데 (이번 법안은) AI 교육업계에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며 ”열악한 상황에 있는 교육업체들은 문을 닫을 위기“라고 호소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