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심심치 않게 받게 되는 요청이 올해의 키워드와 새해의 키워드를 꼽아 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 미디어산업, 정책과 관련된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면 '전환'과 '위기'로 발표를 시작하곤 했다. 전환의 흐름은 비가역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는 디지털 플랫폼 주도로 재구축되고 있다. 숏폼의 활성화는 동영상 소비뿐 아니라 제작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롱폼이나 미드폼 콘텐츠를 제작할 때도 숏폼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의식하고 제작하는 것이 유리한 환경이다. 숏폼 이용량 증가는 디지털 플랫폼 주도의 동영상 소비를 늘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의 추세는 비가역적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넷플릭스를 통해 대한민국 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유튜브를 통해 1인 크리에이터 시장이 성장했을 뿐 아니라 K팝도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여왔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의 본원적인 경쟁력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레거시 방송 미디어 사업자의 투자와 노력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레거시 방송 미디어 사업자들이 겪고 있는 위기는 총체적이다. 방송 생태계의 울타리라고 할 수 있는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을 넘어서 감소하는 추세로 전환됐다. 주문형비디오(VoD) 매출액은 급감하고 있다. 방송광고 하락 폭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적용되고 있는 낡은 규제들로 인해 방송사업자들은 자체적으로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은 광고, 심의 규제로 인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콘텐츠 제작에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서비스 규제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자유로운 상품 구성이 어렵고, 재허가 때마다 부여되는 부관 조건은 투자 규모 등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업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미디어 생태계 내에 놓여 있는 이해관계자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 환경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고, 숏폼 중심의 동영상 소비 환경에서 롱폼 형식의 콘텐츠가 숏폼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등 다양한 혁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최근 다시 편집해 웨이브를 통해 공개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사례와 같이 지식재산(IP)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영향력 있는 출연진과 스타 작가를 활용해 대형 콘텐츠를 제작하기보다는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플랫폼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레거시 방송 미디어 사업자들이 위와 같은 혁신을 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규제 개선이다. 방송광고 규제 체계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방송심의는 시대적 환경에 맞게 새롭게 정비해서 인터넷 기반 동영상 소비로 인해 콘텐츠 내용에 대한 판단 방식이 완전히 바뀐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정비해야 한다. 유료방송에 대해서는 요금 규제, 채널 편성 규제 등 사업자의 자유로운 상품 구성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과감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2025년에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분야는 악화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분야다.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은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강력한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만큼 자국의 콘텐츠 보는 것을 선호하는 국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드라마 제작 편수와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게 되면 심각한 사회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 사회적 쟁점이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지금은 겪어 온 위기와 다가올 위기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다.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이 가진 역동성은 여전히 발휘되고 있고, 2024년에도 '선재 업고 튀어' '흑백요리사'와 같은 기념비적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2025년은 이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들의 창의적인 혁신과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규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2025년 미디어 생태계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멘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nch020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