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미국에서 외국인과 골프를 했다. 그날 처음 본 사람이다. 그분이 먼저 “May I have your name?”이라고 이름을 물었다. What's your name?에 익숙했던 나는 당황했다. 그분이 내 이름을 가진다면(have) 나는 앞으로 내 이름을 못 쓰는 걸까. What's your name?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뜻은 같지만 돌려 말하는 고상한 표현에 불과한 걸까. 황당한 생각이 머리에 떠돌았다. 한 번 더 말해 달라고 I beg your pardon?의 준말인 “Pardon?”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내게 악수를 청하면서 “Nice to meet you, Mr.빠동!” 하는 것이 아닌가. 일상에서 유머를 만들고 변형해보자. 창의력 훈련이 된다.
북미에서 downtown은 도시 중심부를 말한다. city center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가 뭘까. down은 넘어짐, 내려짐, 가라앉음 등에 쓰거나 어울리는 말이다. down이 town 앞에 붙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미국은 유럽이민자들이 건너온 동부 바닷가에서 시작했다. 바닷가는 땅의 높이가 낮은 지역이다. 거기서 발전해 서쪽 높은 지역으로 확장했다. 처음 시작한 뉴욕 맨하탄 저지대가 가장 번성해 큰 도심을 이뤘기에 downtown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선 성곽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했기에 downtown이 아니라 city center라는 말을 쓴다. 이집트, 중국, 인도 등 고대문명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강변 저지대에서 시작했는데, downtown과 비슷한 표현을 썼을까. 하찮은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창의력 훈련에 좋다.
'삼삼오오(三三五五)'는 몇 사람씩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당나라 이백의 시 '채련곡'에서 '언덕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 집 아들인가. 삼삼오오 수양버들에 숨어 몰래 보고 있네.'라고 썼다. 언덕에 모인 총각들이 물가에서 연꽃 따는 처녀들을 엿보는 장면이다. 왜 삼삼오오일까. 이삼사오, 삼사오륙, 삼삼사사, 삼삼육육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삼삼오오는 비밀스레 대화하거나 일을 도모하기 위한 무리의 최소 숫자가 아닐까. 이(2)는 너무 적고 칠(7)을 넘으면 비밀이 지켜지기 어렵다. 삼(3)이 두 번, 오(5)가 두 번 반복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한 두 갈래로 나뉘지만 통일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삼삼오오는 사람에만 쓰이는 걸까. 강아지가 몇 마리 모였을 때 쓰면 안 될까. 대화나 근심을 나누는 모습이니 적당하지 않을 수 있겠다. 미래에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서넛이 모여 있다면 삼삼오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이 창의력 훈련이다.
시인 김광섭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를 보자. 도시재개발 등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여 갈 곳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비둘기에 빗대어 표현했다. 세 연 중 첫째 연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라고 썼다. 비둘기는 성북동 하늘을 왜 '한 바퀴'만 돌은 걸까. 왜 두 바퀴, 세 바퀴, 여러 바퀴를 돌지 않은 걸까. 성북동 주민의 행운을 기원하는 축복이지만 문명에 고개 숙인 그들에게 한 번을 넘는 축복은 주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한 바퀴에 그침으로써 인간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일 수 있다. 축복 메시지를 전하듯 했지만 자기가 살던 공간이기에 그냥 한 바퀴 둘러 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비둘기도 새로운 삶의 공간을 힘겹게 찾아야 했기에 두 바퀴 이상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수 있다. 유명 작가의 시, 소설 등 작품을 읽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도 창의력 훈련에 도움이 된다.
정답만 찾지 말고 다양성을 찾자. 본문을 넘어 주석에 관심을 갖자. 교과서만 믿지 말고 참고서도 보자.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야 생각이 굳지 않고 창의력이 생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