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술 전엔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검사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우선 수술대에 올리고 메스부터 드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재추진과 관련 이렇게 지적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저작권 법정 공방 도중 세상을 떠난 '검정고무신' 작가 고(故) 이우영 씨 사례와 같은 문화콘텐츠 산업의 불공정 관행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불공정 행위 10개 유형을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위반 시 시정명령 등 제재 장치를 마련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집행 권한을 갖게 된다. 시정명령 불이행 시 이행 강제금 부여, 과태료,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다.
취지는 좋다. 창작자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다만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부터 먼저 꺼내드는 관성에 대해선 돌이켜 보고 싶다.
콘텐츠 업계에선 이 법이 드라마, 영화, 웹툰, 웹소설, K팝 등 모든 문화 업계에 대한 규제를 포괄적으로 명시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정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상품 모두를 다루기에 규제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부처 간 중복 규제 문제도 불거진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불공정 거래행위와 겹친다.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등에 근거한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역할과도 충돌된다.
그렇다고 공정위, 방통위, 과기정통부 등 관련 부처 간 적당한 타협으로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수술대에 오르는 건 기업이다. 업계 우려를 충분히 듣고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문체부 역시 “소관 부처로서 콘텐츠 업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우려가 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약속대로 법안 추진에 앞서 문화산업 규제의 필요성과 적용 범위, 방식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곱씹어 볼 때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법안의 완성도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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