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고가가 높은 이유는 통신시장 구조적 문제와 기존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통신사가 단말기 할부를 받아주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 소프트뱅크 정도가 있다. 미국은 단말기와 요금제를 분리해 단말기 가격은 일시불로 지불한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도 오픈마켓 등에서 구매할 때 단말기 할부가 가능하지만, 이때는 카드사가 할부를 제공한다.
통신사가 단말기 할부를 받으면 `단말기 할부대금 채권(이하 단말채)`이 발생한다. 단말채는 부실율이 낮은 우량한 채권으로 평가된다. 고가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단말채 규모가 커졌다. 통신사는 지난 2010년 이후 단말채를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통신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요금인하 압박이 커지면서 영업활동을 통해 확보하는 현금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마진율은 계속 하락했다. 투자여력이 감소한 통신사는 단말채를 통한 ABS 발행으로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단말채를 통한 ABS 발행규모는 지난 2010년 1조1538억원에서 2011년에는 5조8503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10조9507억원으로 전년보다 대폭 증가했다. 2년 만에 발행규모가 10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도 벌써 3조8295억원이나 발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고가를 낮추면 단말채를 통한 ABS 발행의 기초자산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최근 출고가가 소폭 인하되고 있지만, 일정 이상 낮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 부사장은 “출고가를 낮추면 할부원금이 낮아지고, 이통사는 ABS 기초자산이 줄어드는 요인이 된다”면서 “장기적으로 이통사도 이자비용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지만, 당장 발행해놓은 ABS 규모가 큰 상황에서 상환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정 규모의 ABS 발행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시장의 잘못된 관행도 출고가를 올리는데 작용했다. 출고가는 제조사와 통신사가 협의해 결정한다. 예전에는 통신사에 주도권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제조사가 더 주도권을 갖는 것이 차이다. 지금까지 통신사는 출고가를 높이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통신시장에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외국과 단말기 가격 차이가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출고가를 높인 다음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형태로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썼다”면서 “소비자가 할인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고 구매할 수 있게 유인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출고가를 낮춘다고 해도 제조사가 통신사에 공급하는 공급가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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