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급구! 테크노크라트

 ‘천안함, 과학비즈니스벨트,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농협 전산망, 스마트폰 위치정보’. 최근 사회적 이슈를 몰고 왔던 사건들이다. 언뜻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모두 과학 혹은 기술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단순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기본 과학 지식과 기술 정보를 알아야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천안함 피폭 사건만 해도 결과와 배경을 둘러싸고 수많은 과학 이론과 실험을 앞세운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일본 대지진도 자연재해로 출발했지만 원전 폭발과 이에 따른 방사능 유출이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결국 과학 이슈로 번졌다. 농협 전산망 해킹과 스마트폰 위치정보 수집 논란도 따지고 보면 정보기술(IT) 역기능과 관련한 사건이었다.

 사회적 관심에 비해 결말이 시원치 않았다는 점도 공교롭게 닮았다. 천안함 사건은 조사 결과가 공식적으로 나왔지만 정치적 쟁점이 겹쳐 찬반양론으로 갈린 상태다. 이 때문에 사건 발생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천안함은 ‘뜨거운 감자’다. 일본 원전에 따른 피해 여부도 ‘방사능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현안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농협 전산망 사고 역시 북한 해커 소행이라는 발표에도 정작 국방부에서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지막 닮은 점은 더욱 곱씹어 볼만하다. 해결사를 자처한 정부가 대부분 이슈에서 체면을 구겼다. 정부 개입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켰다.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는 등 정부가 앞장섰지만 의혹과 불신만 더욱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천안함 사건이 그렇고 원전 방사능 발표도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농협 전산망 다운의 주범이 북한이라는 발표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있다. 위치정보 수집 건은 기술에 무지한 경찰의 과잉 수사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과학기술 부흥과 발전이라는 본래 취지는 퇴색하고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돼 과학계의 안타까움이 더하고 있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지식과 전문기술로 무장한 정책 관료 즉 ‘테크노크라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이공계 공무원 우대를 부르짖었지만 정작 공대 출신 공무원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5급 기술직 신규 채용 실적은 2005년 50.4%로 정점을 찍은 이 후 2009년 26%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급 이상 고위공무원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중은 38개 중앙행정기관 1479명 가운데 불과 15%인 203명에 그쳤다.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순수 이공계 출신 의원은 16명으로 전체의 5.3%에 불과하다.

 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넘쳐나면서 사회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한때 전문 영역으로 치부했던 과학과 기술 분야는 사회 쟁점의 전면에 떠오를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는 현안도 크게 늘었다.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가 절실한 시점이다. 사사건건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믿지 못하는’ 국민을 탓하기 전에 전문성을 갖춘 믿음직한 정책 관료를 양성해야 한다.

 강병준 정보통신팀장 bjkang@etnews.co.kr